양순주의 하나의 사건과 여러 겹의 시선(웹진 문화다)에 대한 응답

 

김 만 석(<로컬데모>)

 

1.

20151231일 뜬금없이 <로컬데모>를 언급한 한편의 글이 도착하였다. 양순주의 하나의 사건과 여러 겹의 시선(웹진 문화다http://www.munhwada.net/home/m_view.php?ps_db=letters_vilage&ps_boid=24)은 지역의 두 문예지의 여러 사정들을 언급하고 있었고 그 첫머리에 신생사태에 대한 이견을 담고 있던 터라 관심을 기울여 거듭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 글은 비평문의 꼴을 취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공유되지 않은 정보들을 근거로 논지를 펼치고 있는 터라 논점을 종잡을 수 없고 사안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기보단 맹렬한 비난에 가까운 어휘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아울러 같은 지역의 구성원이라는 발화 위치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으나 동료라는 수평적인 자리에서 의견을 전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소간 과잉된 방식으로 <로컬데모>의 저의나 욕망, 정치적인 불순함을 확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로컬데모>의 활동을 단순화하고 왜곡하고 있는 글이기에 이에 응답하려 한다.

  양순주의 글을 조목조목 따져 읽기보단 핵심적인 주장을 간략하게 정리해 답하는 게 필요할 듯해 세 가지 정도로 나누어보았다. 1)지역잡지 신생에서 해임된 두 사람이 <로컬데모>를 통해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해임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해임자체만을 드러내는 것은 일방적이고 편파적이다. 2)잡지 발간을 하다보면, 헤아릴 수 없는 여러 사정과 갈등이 발생한다. 이를 내부에서 수용하고 동료애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는 일도 있고 없는 일도 있다. 지역잡지 오늘의 문예비평도 그런 경험을 했다. 현재 출판사를 옮기게 된 사정으로 힘들지만 함께 이겨내려 한다. 오늘의 문예비평은 앞으로 더 날카로워지려고 한다. 3)발랄하고 현란한 수사로 무장한 후배들이 애초의 문제 의식을 흐리게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잘 알지도 못하는 자들의 동의의 언사가 제 2의 피해자를 낳고 있으니 자숙할 필요가 있다. 이 외에 <로컬데모>와는 관계없이 제시되는 문맥들이 있어 짐작과 추론이 아니라, 다시 질문을 드려야만 하는 상황이기도 함을 미리 밝혀둔다.

 

2.

우선 오늘의 문예비평이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더욱 열심히 정진해주면, 지역의 비평문화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의 문예비평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양순주의 글도 침체된 비평문화를 활성화 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양순주는 자신이 발화하고 있는 말의 근거를 마련하지 않은 채 확신에 찬 어조로 자신의 주장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어서 비평문화 활성화에 값했는지는 회의적이다. 양순주는 오늘의 문예비평의 내부 사정을 근거로 짐작하거나 추론하여 신생 두 편집위원에게 행사된 권리박탈의 이면의 진실이라는 게 있을 수 있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고 있다. ‘신생 사태5년 이상 편집위원직을 맡고 있던 두 사람(김대성/김만석)을 제외한 자리에서 해임 건을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이에 대한 해명 요구에 그 어떤 응답도 하지 않고 묵살로 일관하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지칭한다. 양순주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는 이면의 진실해임 건에 관한 건지, ‘묵살에 관한 건지, 대체 그게 무엇인지 그 진실을 직접 알려주었으면 한다. 그런 게 있다고만 쓰고 있고, 글의 어디에도 그 구체적인 내용을 찾을 수가 없어, 답답한 마음에 관심법이라도 실시해야 하는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이 원고가 짐작과 추론에 의지한 채 과격한 방식으로 작성되어 있어 꼼꼼하게 읽는 것이 다소 민망한 노릇이지만, “<로컬데모>”로부터 출발하여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이것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자와 같은 알 수 없는 수사를 동원해 모든 사람들을 싸잡아 이어 붙여 동일화하려는 논리를 반성 없이 활용하는 필자의 논리적 비약을 감내하며 묻고자 한다. <로컬데모>가 부산문단을 페이스북을 통해서 논란으로 만든 적이 있는가? 양순주는 <로컬데모>가 주최하는 모임에 한 번도 참석한 일 없이 어떻게 그 모임에 참석한 구성원들의 면면에 대해 공통의 문제의식’(‘신생 사태에 대한 문제제기)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을 동일한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양순주 본인의 표현처럼 인식론적인 폭력에 해당되는 일이지 않은가? 더 알 수 없고 문제적인 대목은 <로컬데모> 입장에 대해 지지 하지 않는 이들을 가해와 피해, 권력과 폭력이라는 이분화된 잣대를 들어가며” “비판하고 심판하고 있다고 하는데, <로컬데모>가 어떤 비판과 심판을 했는지 알려주기 바란다. 필자가 강조하는 것처럼 사안에 대한 겹의 시선을 강조하려면, 적어도 자신이 일관된 태도로 공격하고 있는 <로컬데모>의 활동 또한 여러 겹의 시선으로 읽어보려는 시도라도 해야 하는 일 아닌가? 자신이 속해 있는 매체에 대해서는 세밀하게 묘사하며 분투하고 있음을 구구절절 알리고 있으면서 타인의 활동에 대해서는 어째서 저토록 과감하게 단순화하고 근거없는 비난과 심판으로 일관하고 있는지 그 저의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양순주의 글이 자신이 속해 있는 매체의 고군분투를 홍보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로컬데모>라는 모임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기 위한 것인지 글의 내용만으론 파악하기가 어렵다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에 누군가가 관련한 글을 남기면 모두가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로컬데모>에서도 여러 차례의 메일링과 게시판에 관련 글에 대한 업로드를 통해서야 신생 사태의 내용을 겨우 전달할 수 있었다. 나름의 방식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그 비평가의 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 무응답의 고리를 깨트리고 최초로 발언한 이에게 되돌아온 것은 동지를 만났다는 기쁨이 아닌, 그간의 침묵에 대한 다그침과 질책<로컬데모>가 했을 리 만무하다. 우리는 어떤 사태를 알리기 위해 몇 개월간 갖은 경로를 통해 응답을 기다려왔다. 6개월 기간 정도를 지나왔음에도, 여전히 응답을 기다렸고 뜬금없이 이상한 방식으로 도착한 양순주의 글에도 이렇게 응답하고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로컬데모>가 하지 않은 일을 한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는 뻔한 조언을 하기 보단, <로컬데모>가 다그친 적도 질책한 적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로컬데모>가 그런 행위를 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방식으로 진술해야만 하는 황당한 저의가 궁금할 따름이다. 우리는 신생 사태를 사적인 불행이 아니라 공적인 문제로 전회할 필요가 있음을 요청한 일은 있지만 그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해서 누군가를 규정하려 하거나 낙인찍은 일은 없다. 

<로컬데모>는 그간 연속간담회데모북등을 통해서 후기를 남기고 전달된 말을 잘 받아서 다시 돌려주기 위해 애를 써왔다. 데모북과 연속 간담회를 통해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와 출판노동자 그리고 시간강사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 참여하지 않거나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이를 으로 상정하고 매도한 바가 없다. 사실과 무관한 이런 대목들을 제외하고 담백하게 양순주의 원고를 읽으면 오늘의 문예비평에 관한 홍보이자 소식이어서, 그에 관해서 우리가 따로 드릴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다. 힘내서 열심히 하시기 바란다. ‘해봤으니 다 안다는 어법이 유행한 적도 있었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여전히, 왜 본인이 소속된 잡지 사정과 <로컬데모>를 겹쳐서 쓴 것인지 납득되지 않는다  

 

3.

<로컬데모> 활동을 지지하고 있는 이들을 싸잡아 매도하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조언을 하려는 대목이 있어 이를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아래 인용문은 문학자의 신념/결단/윤리를 들이밀면서 이루어지는 조언으로 사실 <로컬데모>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니니 우리가 답한들 물음을 던진 이를 만족시켜줄 순 없겠지만 연대 서명을 해준 분들과 현장에 나와 응원과 지지의 말을 전해준 동료들에 대한 도의적 책임감으로 짧게나마 답하고자 한다. 연대 서명의 자리를 잘 알지도 못하는 자, 그들의 말을 감정적 울분의 표출, 혹은 막말을 일삼으면서 되갚음 하는 폭언으로 매도하고 있는 양순주의 규정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로컬데모에 동의를 표하면서 끊임없이 문제 해명을 촉구하는 사람들에게도 묻고 싶다. 일상적인 주변의 문제들을 얼마만큼 예민하게 감각하고 반응하고 응답을 주었는지 말이다. 그들이 날카롭게 들이미는 칼날이 실상 자신을 향한 적은 있는지 되물어 보고 싶다. 적어도 공부를 하면서 사유하고 말하고 글쓰는 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을 동반해야 한다. 다른 이들을 파괴시키는 비판의 화살이 나에게만 너그럽고 관대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에게도 그 활을 팽팽히 당겨 날카로운 화살을 겨냥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문학자의 신념이자 결단, 아직까지는 저버릴 수 없는 윤리라고 생각한다.

(중략)

더불어 잘 알지도 못하는 자들의 동의의 언사들은 역으로 제2, 3의 피해자를 낳고 있다. 감정적으로 울분을 표출하면서 혹은 막말을 일삼으면서 되갚음 하는 글들은 폭언에 다름 아니다. 로컬데모의 서명에 적힌 몇몇 한마디들을 보면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모두가 당사자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면 책임감 있는 발언이나 행동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진실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일 때만 진실의 자리를 지켜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생 사태또한 그럴 것이다. ‘신생 사태가 두 편집위원을 배제한 자리에서 공모를 통해 해임을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권리 박탈의 사안이 아닌 풍문으로 떠돌고 있는 이면의 진실에 의해 다르게 기록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어떤 집단이든 내부적인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신생 사태는 뒤늦게 그것을 폭로하고 고발하기 위해 명명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그와 같은 사실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공개적인 방식으로 기록하고 알린 바가 있다. 다시 그 내용을 설명하기보다 누구라도 읽을 수 있도록 열려 있는 블로그에 들어와 최소한의 정보라도 확인하고 말을 건네주었으면 한다. 현실이 시궁창이라고 현장까지 버릴 수는 없다. 내몰린 자리에서 가까스로 현장을 지키고자 <로컬데모>라는 협의 구성체를 만들어 일구고 있다. 6개월 간 <신생>의 편집진들에게, <부산작가회의>의 사무국과 회원들에게 수차례 이 사태를 알리고 해결 방안을 촉구하는 요청을 보냈으나 응답하지 않았다. 이 묵살의 구조가 단지 두 당사자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곳의 모든 이들이 당면해 있는 문제라는 인식으로 <로컬데모>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로컬데모>신생 사태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많은 문화예술인들과의 교류 속에서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들을 현장에서 기록하고 또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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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겨울, 시간강사 / 김만석  (0) 2015.12.25

원문 : [인문학 칼럼] 겨울, 시간강사 /김만석(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51224.22031192814)

겨울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드러나는 계절이다. 잡풀에 가려졌던 나무의 뼈대가 드러나고 이파리에 가려진 혈관들도 속수무책으로 나타난다.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보이기도 하고 놓치거나 잊어버리고 있던 기억들이 달력을 바꿀 때 문득 나타나 괴롭히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겨울은 세계를 민낯으로 보이게 만드는 힘을 가진 계절이기도 하다. 아무리 두꺼운 옷으로 몸을 칭칭 감고 있어도 몸 안쪽에서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통풍이 예민하게 바깥 기온들을 알아차리듯, 겨울이 되면 녹음과 과실의 성과에 취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차갑게 식은 사물들은 생경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촉감을 날카롭게 만들기도 한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나 자신들을 드러낼 수 없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제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겨울은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스승'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겨울이 되면 '스승'의 자격이 박탈되는 사람들이 있다. 시간강사들이 그러하다. 시간강사는 대학 내 구성원이지만, 대학 내에서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겨울이 와도 이들은 더 잘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시간강사들에게 겨울은 헐벗는 시간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완전히 헐벗어 가시권에서 사라지는 존재라는 것이다. 물론 학생들과 교학상장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며 매 수업 때마다 무언가를 일구려고 하지만, 그것이 겨울 너머 '미래'를 열어주지 않으니 시간강사들에겐 봄도 없다.  

만약 시간강사의 현재가 망각되거나 지워야 할 시간이라면, 수행하는 수업은 모두 지워져야 할 수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시간강사들은 빈자리로 대학 내에 위치해 있는 셈이다. 시간강사의 역사나 경험들이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적 담화 속에서만 고개를 겨우 내밀 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비정규 시간강사 노조가 대학 내에서 자신들을 알려왔지만, 대학 안팎에서 모두 이들의 활동을 보고 있음에도 모른 척해왔고 그들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묵살해온 것도 사실이다. 이른바 시간강사법이 내년 1월 1일부로 발효되기 바로 직전에서야 '유예'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 이를 잘 보여준다.

물론 시간강사들이 단지 무기력하게 법적, 정책적 결정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발간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은 시간강사가 대학 내에 유령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연구노동자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위치시켜준 저작이다. 굳이 자신의 존재를 밝히고 위치를 가늠해야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야 곤경들로 가득 찬 이야기로만 읽히겠지만, 매번 애써 자리를 모색하고 활동의 지속을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시간강사의 일상을 치열하게 길어 올린 민속지적 보고서이자 연구서와 다르지 않은 책이다. 이뿐만 아니라, 비정규 시간강사 노조는 2007년 이후부터 지금껏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해 오지 않았던가. 

더불어 지난 18일 부산 중구 중앙동 또따또가 갤러리에서 진행된 '로컬데모'의 서평회와 연속간담회에서는 시간강사들이 부산에서 처음으로 대학 바깥에서 자신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논의한 바 있다. 시간강사 문제가 다만 당사자들이 겪는 곤경이며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내팽개쳐야 할 것이 아니라 사회의 공적 지식의 생산에서부터 학생들의 수업권 그리고 대학원생들의 연구 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평에서 공유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 자리였다. 비정규 시간강사 노조 활동을 하고 있는 분과 시간강사 노동으로 15년을 활동하신 분에서부터 강의를 더는 맡지 못하게 된 예술가 그리고 대학원생,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어우러져 열정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대체로 시간강사들이 고립돼 있기 마련인데, 이 자리에서 그 곁에 함께 선 많은 동료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대학 구조조정의 여파로 모두 각자도생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에서 고립을 피하고 곁에 선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할 수 있었다. 예컨대, 모두발언을 했던 한 대학원생은 연구공동체가 와해돼 가는 대학사회에서, 대학생들이 주체로 움직이는 지역적 연대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인문예술사회계 전공이 대학 사회에서 위축되거나 통폐합, 폐과되는 상황에서 연구의 지속과 이를 공적 지식으로 환원하기 위한 방식일 뿐만 아니라 연구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조건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는 또 지역 관계 세대 젠더 등도 함께 논의되었는데, 이는 시간강사의 곁이 다종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시간강사라는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던, 침묵(당)했던 주변들이 함께 만나 말을 드디어 주고받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소소하고 조용한 연대가 이 겨울을 버티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았을 테니까 말이다. 주변은 어디에나 있다. 손을 내밀어 곁이 되자. 


<<국제신문>> 2015. 12. 24







<로컬데모> 성명서 보고

: 89명의 목소리에 대해 신생이 응답할 차례입니다.

 


<로컬데모>는 시 전문 계간지 <신생>에서 발생한 편집위원 권리 박탈 사태에 항의하고 다만 문제제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해명과 사과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여, 이를 공론화하기 위한 성명서를 작성하여 지난 20151031블로그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 여러 분들께 지지를 요청한 뒤 20151115일을 기해 지지 성명을 마감했습니다.


그 결과 20151116일 오전에 참여하신 한 분을 포함하여, 89분이 <로컬데모> 곁에서 응원과 격려의 말을 전해주셨습니다. ()독자, 자발적 백수, 주부, 연구자, 문학인, 대학생, 대학원생, 작가, 예술가, 비평가, 시인, 소설가, 글쓰기, 비정규 교수, 교수, 기획자, 활동가 등등 활동의 반경은 모두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신생>에게 절차상의 문제와 사과에 대한 요구 그리고 이후 사태에 대한 재발방지를 함께 강력하게 주문하셨습니다.

 

89분의 다양한 목소리를 <로컬데모>가 잘 마름질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것이 성명서라는 형식을 통해 제안되었고 응답을 받은 이상, <로컬데모>의 말로 재정리되어야 할 게 아니라, 고스란히 <신생>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성명서는 문건으로 작성, 출력하여 <로컬데모>의 입장을 덧붙이는 것 없이 <신생> 측에 고스란히 우편으로 전달을 했습니다. ‘블로그페이스북 페이지에 공개될 성명서 링크를 확인할 수 없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기도 하고 성명에 참여해주신 분들의 이야기를 물리적으로 감각하게 하는 일 역시 <로컬데모>가 해야 할 과정이라고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성명에서 기록된 이름과 전하는 말의 생생함과 무게를 <신생> 측 역시 감지하기 위해선 실물로 받는 일도 중요하다고 여겼다는 것입니다.

 

참여하신 분들의 이름과 말들이 <로컬데모><신생>에게 향하고 있는 이상, 이 문제는 함께 마주하는 일 외에는 더 이상 도리가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물론 <로컬데모>는 이 사태가 어떤 진영과 적대를 구성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로컬데모>는 그간 <신생>이 해온 일을 폄하하거나 부정하고 앞으로 이 잡지가 갖는 지향이 사기라거나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역 내에서 자연화되어 있는 관행이나 구조적인 차원에서 발생하는 부정적인 문제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로컬데모>가 성명서에서 요구한 두 가지 사항이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에 대한 약속인 것은 지역의 문화, 예술적 장에서 이루어지는 실천들이 암묵적인 공모나 카르텔이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표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컬데모>의 이 활동을 아주 사소하게 여기는 시선이 있겠지만, <로컬데모>는 바로 이 영역에서 시작하는 일이야말로 지역과 지역에서 발생하는 부당한 논리와 시스템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로컬데모> 성명서는 이를 첫 단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생>의 응답을 지켜보고 그에 따라 또 성명에 참여해주신 분들께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소식을 전해야 할 의무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번거롭고 귀찮은 소식이 전해지겠지만, 곁에 서 주셨다는 데에 용기를 얻고 이외의 다양한 문제들에도 관심을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로컬데모> 드림

2015. 11. 27.

 

 

<참조>

성명서 최종결과입니다.

http://bit.ly/1Of06fI

 

로컬데모 성명서

시 전문 계간지 ≪신생≫의 사과와 시정을 요구한다

2015년 7월 1일,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잡지 발간을 위해 애를 써왔던 시 전문 계간지 ≪신생≫의 편집위원 두 명(김대성, 김만석)의 편집위원 권한이 당사자인 두 사람을 제외한 자리에서 공모해 강제로 박탈당한 사건이 있었다. 이에 ≪신생≫의 구성원들(발행인-서정원, 편집인-이규열, 편집주간-김경복, 편집위원-김수우, 김참, 이성희, 황선열, 편집장-이은주)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문제 제기를 했지만, 일관되게 묵살해왔다. 김대성, 김만석은 부산 지역 문인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공적 기구인 ‘부산작가회의’에 이 일을 중재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를 사적인 개별 사안으로 규정하고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을 뿐이다. 하여, 지역문화예술인들의 권리 수호를 위한 협의체 <로컬데모>를 통해 대응하고자 한다.

최근에 발간된 ≪신생≫ 64호(2015, 가을호)에 짧게 언급된 김대성, 김만석에 관한 내용은 사실 관계를 왜곡했을 뿐 아니라 부끄러움을 모르는 ≪신생≫ 구성원들의 태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아래에 그 내용 전문을 첨부한다.

"≪신생≫ 내부의 일을 전하고자 한다. 그 동안 편집위원으로서 잡지 편집을 함께 했던 김만석 김대성 두 편집위원이 내부적 사정으로 이번 가을호를 기점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그 동안 잡지 발간에 노고가 컸던 두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며, 나간 이후의 앞으로의 일에 많은 축복과 발전이 있기를 기원한다.”
— 편집주간 김경복

얼핏 두 사람에 대한 노고를 치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편집위원직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언급은 당사자들과 그 어떤 논의도 없이 내부 공모로 편집위원 권한을 강제로 박탈한 사실 관계를 왜곡하고 있다. 두 사람이 어떤 이유로 그만두게 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없이 마치 자의에 의해 그만두게 되었다는 문맥으로 교묘하게 위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에게 전하는 노고와 감사의 언급 또한 ‘<신생> 사태’에 대한 책임과 사과 요구를 일관되게 묵살해온 ≪신생≫ 측의 기만적인 태도를 반증하고 있을 뿐이다.

김대성, 김만석이 요구해왔던 것은 허울뿐인 감사와 축복의 말이 아니라 편집위원 권한 박탈에 대한 ≪신생≫ 측의 해명과 사과였다. 해당 잡지의 구성원이 제기하는 정당한 문제제기를 묵살로 일관하는 행위는 지역문학장의 민주주의 가치를 침해하는 행위임을 인지하기 바란다. ≪신생≫은 이 사태에 대한 묵살의 태도를 중단하고 지역문학을 이끌어온 지난 역사의 가치를 스스로의 힘으로 회복하기 바란다.

사실 관계를 은폐하고 왜곡하는 기만의 문장 또한 역사의 한 부분으로 기억된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았으면 한다. 오늘의 ‘묵살’ 또한 어딘가에 틀림없이 기록된다. <로컬데모>는 시 전문 계간지 ≪신생≫ 현재 구성원들의 기만을 규탄하며 묵살로 일관한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기록해 누구라도 열람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우리는 두 사람의 편집위원 권한을 강제로 박탈한 ‘<신생> 사태’를 지역문화예술장의 폐쇄성이나 독점적 권력이 남용되고 있는 문화적 낙후성의 증표만이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묵인해온 ‘묵살의 구조’를 해체하고 권리의 사각지대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왔던 문화예술인들의 권리 수호를 위한 동력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발명해낼 것이다.

<로컬데모>는 지역문학장의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고 있는 시 전문 계간지 ≪신생≫의 기만을 규탄하며 아래와 같은 사항을 요구한다.

하나, 시 전문 계간지 ≪신생≫은 김대성, 김만석 두 편집위원의 권한 박탈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시정하라.
하나, 시 전문 계간지 ≪신생≫은 사실 관계를 왜곡한 64호의 내용을 철회하고 해당 잡지에 김대성, 김만석 두 편집위원의 권한을 강제로 박탈한 내용과 이를 시정한 내용 및 사항을 소상히 밝혀 게재하라

2015. 10. 17.
지역문화예술인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협의 구성체
<로컬데모>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로컬데모>의 성명서에 여러분들의 연대서명을 요청합니다.
아래 항목에 각자의 목소리를 담아주시길 바랍니다.

로컬데모 성명서
연대서명하기



인적 재개발 사건 일지

<신생> 사태와 지역의 문화적 제도와 실천들

 

* 이 일지는 하나의 사건 연대기이다. 이 연대기를 기록하는 것은 이른바 ‘<신생> 사태가 지역 내부에서 여전히 내부 갈등으로만 치부되고 있는 터라 논의 자체가 진행되지 않고 사적인 자리에 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논의 자체를 하지 않거나 할 수 없게 만드는 묵살의 구조에 대한 대응을 우리는 사건의 연대기 기록을 통해서 해나가고자 한다. 이 연대기 속에서 포착되지 않는 세세한 과정들도 서술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러한 사정들은 <로컬데모>의 간담회와 다양한 글쓰기들을 통해서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간략한 기술로 대신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연대기에 들어올 수 없는 다양한 시간들과 사건들이 비슷한 시공적인 특성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고 해도, 접속하여 지도를 그려나갈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사건의 연혁과 경험들을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도록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 더 풍성한 지도가 그려지기를, 여러 개의 또 다른 사건일지가 중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그 속박된 자리에서 벗어나 지역을 드디어 발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가능성이 고작 이러한 조건에서 출발하는 것은 그저 슬픈 것이 아니라 시작을 위한 기초를 이룬다는 차원에서 언제나 새로운 만남을 이룰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2015

625일 목요일

김대성, 김만석의 <신생> 마지막 편집회의. 편집장으로부터 622일 월요일 선생님, 이번 주 목욜 630분에 편집회의가 있습니다. 신작시, 특집시 추천할 분과 기획특집, 르포, 풍경, 이 한 편의 시, 서평 생각해 오십시오.”라는 내용의 문자 모든 편집위원들에게 일괄적으로 전달. 이 날 편집회의 마치고 김대성, 김만석은 저녁만 같이 먹고 2차 술자리엔 동석하지 않고 귀가.

   

626일 금요일

발행인 서정원은 전화로 편집위원 김만석에게 연락을 하여, 중앙동에서 보자고 한 뒤, 김대성에게도 시간과 장소를 알리고 문자로 연락을 주겠다고 한 뒤, 오전 1146“71일 오후 7시 중앙동 홍문에서 보자라는 메시지를 수신.

 

71일 수요일

중앙동 중국음식점 홍문에서 발행인을 만나 저녁 식사를 주문. 왜 보자고 한 것인지 영문을 모르는 두 편집위원 김대성, 김만석이 재차 오늘 회합의 목적을 묻게 됨. 발행인이 편집위원들 모두의 동의에 의해 김대성, 김만석이 더 이상 <신생> 편집위원이 아니라고 알림. 그 자리에서 발행인에게 김대성, 김만석이 곧바로 항의하고, 이유를 물었으나 발행인은 마음이 맞지 않아서라고 대답함. 자리를 옮겨 다시 항의를 했으나 결정은 내려진 것으로 기정사실로 반복할 뿐이었음. “그만 두는 게 너희들에게도 좋다는 모호한 이야기를 통해 구성원 모두가 동의한 것이라고 알림.

 

75일 일요일

<신생> 구성원 모두에게 김대성, 김만석의 편집위원 권리 박탈에 대한 문제제기를 담은 메일을 발송. 편집위원 권리에 관한 사안이 당사자인 두 사람을 배제한 자리에서 일종의 공모의 방식으로 합의되어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은 평등해야 할 편집위원 체제가 왜곡된 것이기에 그러한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한 발행인뿐만 아니라 편집인과 편집주간의 사과와 해명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요구하는 메일을 발송.

 

78일 수요일

<신생>의 편집주간으로부터 김대성, 김만석의 공식적인 항의 메일에 대해 공식적으로 무대응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을 개별 전화 통화로 알린 후 공식적인 입장을 피력하지 않음. 무대응이라는 무시와 묵살의 구조 아래에서 두 사람의 편집위원 권리 박탈이 필연적으로 내부 갈등으로 축소될 것이라 판단하고 그럴 때 이른 바 개인에 대한 품평론으로 흐르게 될 것임이 예상되었기에 이를 사적인 갈등 문제로 축소하거나 희석시킬 수 없다고 판단해,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의제화 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판단을 내림.

 

714일 화요일

부당한 권리 박탈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조차 지역 내부에선 너무 많은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으나 지금의 우리뿐만 아니라 과거의 누군가가, 또 미래의 누군가 또한 이와 같은 권리 박탈이 반복될 것이 뻔하기에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로 결정. 그 첫 번째 단계로 <부산작가회의> 회원들에게 이 사태를 알리는 호소 메일을 보냄. <부산작가회의> 회원들에게 메일을 보내야 했던 것은 <신생> 발행인과 부산작가회의 회장이 동일 인물이어서 이에 대한 부담을 가질 것에 대한 배려의 차원에서 사무국을 거치지 않고 두 사람이 회원들에게 호소문을 보낸 것임. 이를 <부산작가회의>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도 업로드 함(이후 <부산작가회의>에 보낸 호소문과 경과보고 등은 자유게시판에 업로드).

 

717일 금요일

<부산작가회의> 회원들에게 보낸 이후로도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없어, 공식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응답해줄 것을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에 공식적으로 알림.

 

721일 화요일

부산작가회의 회원들에게 보내는 두 번째 메일을 작성하여 보냄. 사건에 대해 다시 설명하고 진행된 사안에 대해 경과보고를 함.

 

721일 화요일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의 공식 답변이 도착. 답변의 내용은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신생> 측의 내용을 듣지 못해 의제화가 어렵다고 아주 간략하게 답함.

 

723일 월요일

<부산일보><국제신문><신생>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리고 후속 취재 후 연락하겠다고 전함. 두 사람의 일방적인 권리 박탈과 지역문학 기구의 침묵과 묵살이 암묵적인 동조 구조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판단하고 이러한 권리 사각지대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 아래에 지역문화예술인들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협의기구를 구성할 필요성을 느낌. <로컬데모>(LOcal CULture DEMOcracy)라는 이름의 협의 기구를 발족. <로컬데모>의 공식적인 활동과 방향을 논의하고 결정. <로컬데모 : 인적 재개발에 저항하는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연속간담회>로 가닥을 잡음. 첫 번째를 여는 차원에서 김대성, 김만석 그리고 이와 유사한 경험을 했던 박진명(전 금정구 예술공연지원센터장)을 섭외.

 

726일 일요일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의 공식 답변에 대한 문제제기의 메일을 보냄. 이후 사무국의 공식적인 응답은 없는 상태.

 

727일 월요일

<부산작가회의>에서 주관하는 행사인 문학톡톡: 조갑상, 『다시 시작하는 끝’(중앙동, 자유바다소극장) 토론자로 김만석이 섭외되어 있어 참여. 부산작가회의 회원들이 이 사안에 대해 유쾌한 반응도 보였지만 여전히 말을 아끼고 있는 상태. 행사 마친 후 뒤풀이 참석을 하지 않음.

 

728일 화요일

오전 1044분 경 서정원 발행인으로부터 “31일 시간되면 만났으면 한다. 중앙동에서. 답을 기다리겠다고 하여, 편집위원 권리박탈의 경우와 유사한 방식의 만남이니 공식적인 것인가, 비공식적인 것인가에서부터 목적이나 이유 등을 문자로 문의했지만, 응답이 없었음.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음. 사실 이러한 문제를 실질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것은 편집인과 편집주간이어야 함.

 

84일 화요일

<로컬데모 : 인적 재개발에 저항하는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연속간담회>(1)에 관한 언론 보도문을 배포하고 이 사안을 문학 장 내부의 문제가 문화적 실천들 전체가 경험하는 문제라고 판단하여 문제의식을 보다 더 확대하고자 함. 두 사람의 이름을 지속적으로 쓰는 것보다 새로운 명칭을 고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로컬데모>를 공식적인 명칭으로 활용. 한국작가회의와 부산문화재단 홈페이지 등에도 관련한 내용을 업로드 함.

 

86일 목요일

중앙동 <또따또가 갤러리>에서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참석인원 24명과 더불어 제1회 간담회를 진행. 김대성, 김만석, 박진명 세 사람들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해 참여자들의 의견과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됨. (이에 관련한 자세한 사정은 녹취록을 통해서 공개)

 

817일 월요일

부산대학교에서 본관에서 일어난 고 고현철 교수님의 투신과 사망으로 <로컬데모>의 진행을 멈추고 애도에 동참. 그가 남긴 무뎌짐사회적 민주주의라는 날카로운 어휘를 만나면서, 현실이 부과하는 다종다양한 모욕들의 강도에 대해 놀라고 슬퍼함. 그가 남긴 유지가 날카로움과 사회적 민주주의의 구성이라면, 그의 말이 살아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남은 자들의 몫이라면 그것은 모두의 몫이라고 할 수 있음.

 

824일 월요일

<부산일보><국제신문>에 후속 취재가 이루어지지 않아 연락을 취했지만, ‘취재계획 없음을 알림. 이 문제를 의제화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분투했지만, 궁극적으로 소문과 풍문으로 유통되는 과정들만이 지배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 지역에서 권리박탈에 관한 사안이 발생하고 이를 살펴볼 수 있는 공식기구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을 때, 침묵이 강제되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논리들은 개인적인 품성문제로 귀착한다는 것을 새삼스레 확인하게 됨. 이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대안적 미디어를 고민하게 되었고 향후 무크지 발간을 계획하게 됨.

 

827일 목요일

1회 간담회에 대한 평가회 오후 3시에서 6시까지 남포동 <커핀그루나루> 3층에서 진행. 12명 참여. <로컬데모>라는 모임을 어떤 방식으로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현재 이 사안에 대한 지역에서의 일반적인 반응과 대응 양상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에 양 측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간담회 자리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논의 됨.


<로컬데모>의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loculdemo) 개설 됨.



*지역 문화예술장에 만연해 있는 개인의 권리 침해와 그에 대한 논의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묵살의 구조를 단박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투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문제를 중재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기구의 부재에 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신생 사태'로 촉발된 <로컬데모>의 활동 또한 장기화 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 투쟁 또한 일상을 버리고 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일상을 지키기 위한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역문화예술판의 권리 침해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기구가 부재하니 당사자인 우리들이 그 작업을 해나가야 했습니다. 그 첫번째 작업이 토론회가 아닌 간담회의 형식을 취해야 했던 것은 모두가 당사자의 위치에 발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고 단발성이 아닌 연속성을 가져야 했던 것은 필연적이었습니다.

렇게 <인적 재개발에 저항하는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연속 간담회> 1회를 열었고 부산의 문화예술인 24명이 모여 2시간 넘게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이 간담회를 알리며 저희들은 이 문제를 처음으로 부산작가회의가 아닌 다른 곳에 알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보다 그간 저희들이 놓여 있던 기구와 구조 속에서 한 스텝씩, 하나 하나 확인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지역 언론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취재 요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부산의 대표적인 두 언론사의 문화부 기자들 또한 이미 '신생 사태'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렇지 않아도 연락할 참이었다는 반가운 응답을 주기도 했습니다만 '신생 사태'에 관해서든 이 간담회에 관해서든 지역 언론사를 통한 그 어떤한 기사도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조금 기이하게 여겨지지 않습니까? 간담회에 한 지역 언론사의 문화부 기자가 취재를 하기 위해 참석을 했었고 간담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는데 말입니다. 이미 7월 말에 '취재해보겠다'는 언질을 받은 바가 있음에도 그 어떤 기사도 나오지 않아 해당 기자에게 전화로 문의했습니다만 '갈피를 잡기 어렵다'는 모호하고 궁색한 답변 밖에 없었습니다. 사건의 전개와 내용이 베일이 싸여 있는 것도 아닌데 갈피를 잡기 어렵다니요. 취재와 보도권이야 기자 고유의 권한이니 더 따져물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만 '갈피를 잡기 힘들다'는 답변은 무척이나 궁색한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또 다른 지역 언론사의 문화부 기자와의 통화 내용은 너무나 무례하고 어처구니가 없는 말들을 들은 터라 차마 여기에 옮기지는 못하겠습니다. 다만 지역 언론사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가라는 고민은 저희들만이 짊어져야 하는 몫은 아니겠지요.

연속 간담회를 시작으로 '신생 사태'로 촉발된 지역문화예술인들의 권리 침해에 관한 문제를 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 고민하기 위해 언론사 보도협조문을 작성했습니다. 보도협조문이라기보단 일지 같기도 하고 선언문 같기도 한 터라 읽으시는데 갈피를 잡기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LO-CUL-DEMO :

인적 재개발에 저항하는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연속간담회(1)

일시 : 2015년 8월 6일 목요일 오후 4시~6시

장소 : 부산 중구 중앙동 <또따또가 갤러리>

주최 : 로컬데모(LOcal CUlture DEMOcracy)

제 1회 인적재개발의 경험과 현재

 

간담회 문의 및 연락처 :loculdemo@gmail.com

 

2015년 한국문학의 최대 이슈는 ‘신경숙 표절 사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사태의 중요성은 신경숙이라는 유명 작가가 행한 표절이라는 비윤리적 행위를 폭로하는 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거대 출판 자본과 문학권력의 공모에 의한 역사적 결과라는 점에 있다. 이렇게 만천하에 드러난 한국문학의 민낯을 둘러싸고 쉽게 끝나지 않을 공방전을 치루고 있지만, 여기 우리들은 한국문학의 또 다른 민낯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비주류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터라 언제나 응원과 지지의 방식으로만 논의되어왔던 ‘지역문학’의 어떤 민낯 말이다.  

 

1999년 부산에서 창간한 시전문계간지 <신생>은 2015년 7월 1일, 5년 이상 편집위원 활동을 해온 문학평론가 김대성과 김만석의 편집위원 권한을 박탈했다. <신생>의 발행인(서정원)과 편집인(이규열), 편집주간(김경복), 편집위원(김수우, 김참, 이성희, 황선열), 편집장(이은주)은 두 사람을 제외한 자리에서 공모하여 ‘마음이 맞지 않는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를 내세우며 ‘편집위원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통보하였다. 정상적인 논의구조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편집위원 권한을 박탈한 이 사태에 대해 김대성, 김만석은 동의할 수 없다고 문제제기 하며 사과와 해명을 <신생> 측에 공식적으로 요구하였으나 그 어떤 응답도 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런 사정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며 이에 김대성/김만석은 7월 14일, 21일 두 차례에 걸쳐 부산작가회의 회원들에게 호소문과 경과 보고 메일을 발송하였다.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의 공식 입장은 이 건을 개별적인 사안으로 간주하고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7월 26일 김대성/김만석은 사무국에 사태에 대한 안일한 인식 변화를 촉구하는 메일을 보냈고 8월 3일 경과보고와 간담회 소식을 알리는 메일을 보냈다.(사무국에 보낸 메일을 제외하고 부산작가회의 회원들에게 보낸 메일은 모두 부산작가회의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업로드 되어 있다)  

 

이 사태는 얼핏 특정 잡지 내부에서 발생한 사적인 이해관계의 충돌로 보이지만 잡지를 만드는 구성원에게 가해진 비정상적인 공모에 의한 권한 박탈은 명백한 폭력이며 권리 침해에 해당한다. 이에 김대성, 김만석은 부산 문인들의 권리와 권익을 보호하고 대변하는 공적 기구인 <부산작가회의>에 이 문제를 알려 공론화 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는 <신생> 사태에 관련되어 있는 모든 구성원이 <부산작가회의> 회원일 뿐만 아니라 이 문제제기가 그저 개인의 억울한 사정을 고발하는 것을 넘어 지역은 물론이거니와 한국문학 전체에서도 구체적으로 거론된 바 없던 내부의 비민주적인 공모에 의한 폭력 행사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로 구성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태를 그저 황망하고 비참한 일을 당했다는 수동적인 경험이나 사적인 일로 묻어야 할 것이 아니라 공적인 문제로 옮겨두지 않는다면 이런 일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아울러 <신생>이 아닌 다른 매체에서, 다른 단체에서 또 다시 이런 문제가 발생할 때 그 사태를 홀로 감내해야 하는 이들이 두 사람처럼 참담함 속에 고립되지 않을 수 있도록 작은 매듭을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원들의 권리와 권익 보호를 위해 나서야 할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은 그 어떤 개입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만을 밝혔을 뿐이다. 우리는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을 통해 이 문제를 공론화 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거부당했기에 회원들에게 그간의 사정을 알려 의견을 모아줄 것을 요청했다. 이러한 과정은 3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부산작가회의>라는 부산문단의 공식 기구가 권력을 독점한 몇몇에 의해 사유화되고 있는 것이라 바꿔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이 문제의 공론화를 중단한다면 비정상적임도 불구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기는 공식 기구들과 개별자들의 권리를 침해당함에도 그 누구도 문제제기 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부산문단의 풍조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지역을 설명하는 오래된 수사 중에 불모지(不毛地)라는 말이 있다. 이는 혜택을 받지 못했거나 상대적인 박탈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영토’가 속절없이 ‘사막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해야 옳다. 이러한 ‘불모지’는 부산문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계 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구조적인 모순에 가깝다. 지역 문화예술 전반에 이러한 ‘사각지대’가 만연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신생> 사태로 촉발된 지역문화 민주주의의 권리 침탈에 관한 논의는 단순히 지역 문단의 구조적인 모순을 문제화 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 없다. 이에 우리는 <신생> 사태로 촉발된 권력 독점, 공적 기구의 사유화,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위계 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공론화 되지 못하고 사적인 방식으로 은폐되어 권리 침해 및 상징적 폭력이 만연화되어온 지역문화예술계의 사각지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우리는 <로컬데모(LO-CUL-DEMO)>라는 협의체를 구성해 8월 6일부터 <인적 재개발에 저항하는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연속간담회>를 시작한다. 부산 시민과 문화예술인 모두에게 열려 있는 첫 번째 간담회에서는 <신생> 사태의 당사자인 김대성, 김만석과 오랜 시간 금정구 예술공연지원센터장으로 초기 2년을 다졌지만 애써 일구어온 터로부터 배제당한 바 있는 박진명(현 부산청년포럼 위원장)의 모두 발언을 시작으로 ‘인적 재개발의 경험과 현재’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실제로는 노동이지만, 노동으로 평가되지 않았던 탓에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는 장으로부터 자주 버림을 받거나 함부로 취급되는 사례들을 수집하고 이를 공론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문화예술인들의 작업과 노동이 손쉽게 부정당하는 것은 문화예술 인력 장 자체가 워낙 열악하고 유연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 장이 독점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그 속에 있는 문화예술인들의 입과 손, 눈을 특정하게 구조화하는 일련의 방식들이 이런 사태를 만든다고 할 수 있다. 문화예술인들이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현장에서 함부로 내팽개침을 당하고 부당한 일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일들을 대수롭지 않거나 개인적 불우함 정도로 취급하는 것도 그러한 관행들이 매우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존재를 부정당하고 애써 일구어왔던 역사가 강제로 지워지는 폭력 앞에서 도리없이 무력하게 무너져야만 하는 사태를 다른 자리의 발명을 통해 공통의 문제로 삼고자 한다. 개별자들이 겪은 이 피해를 특별한 것으로 특권화 할 것이 아니라 그간 보이지 않았던 ‘권리 침해의 사각지대’를 향해 손을 뻗는(out-reach) 행위로 이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연속으로 진행될 간담회가 우리에겐 ‘지역 내부’에서 ‘지역 바깥’을 향한 첫 걸음이며 학연과 지연 등 강고하게 고착된 지역의 인적 관계망에 기대지 않고 시민을 비롯한 다종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이 다르게 만나고 결집할 수 있는 자리를 발명하는 의미를 가진다. 부품처럼 쓰이다 버려지는 구조조정의 시대를 구조요청으로 변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데모, 결집, 집회는 비단 부산이라는 한정된 지역에 국한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어질 연속 간담회는 바깥으로, ‘다른 이들’을 향해 손을 뻗는 행위와 다르지 않으며 그것은 새로운 구조술, 새로운 연대를 발명하는 공통의 장이기도 하다.

 

* '신생 사태'의 공론화를 시발점으로 지역문단의 수직적 위계 구조와 개별자들을 마치 부품처럼 쓰고 버리는 '인적 재개발'에 대한 문제제기는 없던 무언가는 발명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있지만 작동하지 않는 장치의 스위치는 켜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도와 시스템은 개인을 속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닫힌 문을 두드리는 일이었고 그렇게 깨우는 일이었으며 스위치는 켜는 일이었습니다. 제도의 장치를 하나 하나 확인해야 했던 시간. 그 묵묵부답의 시간 속에서 보이진 않지만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는 낙후되고 쇄락한 제도의 민낯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문제제기에 대한 묵살이 곤궁한 것이 아니라 막무가내식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저희들은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에 '<신생> 사태'를 회원들의 권리를 침탈한 사안으로 개입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간 아무런 반응이 없던 사무국으로부터 한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만 그 내용의 무성의함과 빈곤함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한숨은 30년의 역사를 가진 부산작가회의라는 공적 기구가 한낱 개인의 결정과 판단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며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자 하기에 이 사안에 개입할 수 없다는 사무국의 궁색한 답변이 결국 '신생'을 비호하기 위한 논리와 다르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무대응'을 원칙으로 하는 '신생'의 입장을 알 수 없으니 저희들의 문제제기가 성립할 수 없다는 사무국의 답변. 현재 <부산작가회의>의 회장이 <신생>의 발행인인데 그 입장을 들을 수 없으니 개입할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아무렇지 않게 공식적인 입장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막무가내식의 무성의함과 안타까운 빈곤함을 마주하며 쓴 메일입니다.

 

부산작가회의 회원님들께 드리는 세 번째 글

  

감사의 말씀

모두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비평분과 회원 김대성, 김만석입니다. 폭염이나 염천이라는 말이 절로 실감나는 시간입니다. 안부를 여쭙는 일이 반드시 필요할 정도로 더위가 심신을 지치게 만드는 날이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선지 ‘<신생> 사태’에 관한 경과보고를 하는 게 주저되기도 합니다만, 젊은 두 회원의 호소와 보고에 지지를 표해주신 회원님들이 계시다는 생각에 편지를 보내기로 결정하고 향후 과정에 대해서도 들어주시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집중력이 마냥 흐트러지고 무기력이 기후로 엄습하는 가운데, 대면하기 싫은 현장을 자꾸 바라보게 만들어드리는 듯해 죄송하지만 몇 차례 간곡하게 말씀드린 것처럼 이 유례없는 일을 어쨌든 매듭짓지 않고서 그냥 지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 과정이 저희 두 사람과 <부산작가회의> 그리고 지역 문학 장에 남겨질 역사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를 정직하게 짚지 않는다면 유야무야로 지워질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이 문제제기는 단순히 개인적인 불우함이나 분노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또 어떤 진영을 구분하여 세력화하고 적대를 만들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다만 <신생>에서 편집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는 와중에 그로부터 일방적으로 권리를 박탈당하는 비민주적인 공모가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자연스럽게 여겨진다면, 잘못되었다는 것은 감지하지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는 식의 무의식적인 공모의 문제를 바로 잡지 않고서는 앞으로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심각한 문제를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신생>의 편집인이나 발행인, 편집주간이 편집위원의 권리를 함부로 제한하고 박탈하는 데에도 그것이 문제로 여겨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래도 상관없다는 무의식이 형성되어 있는 이러한 조건들을 문제화 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모색이 그간의 지역 문학장의 역사에서 찾기 힘든 형편이라면, 이 기회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문화적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실감’할 수 있는 공통의 기회로 여겨졌습니다.

 

문학적 실천들이 당면한 삶의 조건과 불화하고 현실적 논리의 이면을 다양한 글쓰기 형식을 통해서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때, 저희들로서는 우리에게 닥친 이 일을 힘겹지만 드러내어 공론화 하는 것이 스스로를 부정하거나 부인하지 않는 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을 각자의 양심의 문제로, 그래서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놓아두어서는 안 되고 의제로 만들어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차대한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저 문제제기가 저희만의 것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제제기가 있기 전에 저런 일이 벌어졌을 때, 어쩔 수 없다고 판단되거나 발행인이나 편집인, 편집주간이 그러한 방식의 권력을 행사해도 도리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해하는 무의식적인 인식이 있어왔다면 그러한 흐름을 저지하는 것은 저희 둘에게만 해당되는 일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신생>으로부터 이 일에 대한 공식적인 의견을 들을 수 없게 되어, 부산작가회의 회원님들에게 호소문을 보내드리게 된 것도 이런 사정에서 비롯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이 일을 <부산작가회>의 전체에 고발하고 <신생>의 발행인과 편집인, 편집위원, 편집장을 처벌해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이 일이 바로잡힌다고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가능하다면, 부산작가회의 내부에 이러한 문제들을 검토할 수 있는 상설기구나 현재 위원회들이 이를 논의하고 공론화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질적인 해결이 아니라고 해도 이 문제제기를 <부산작가회의>에서 수용하고 이 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대응하는 것만이라도 큰 성과라고 이해되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라도 응답이 이루어진다는 건 수정, 교정 그리고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으로부터의 응답에 대하여

저희는 회원님들께 두 번째 편지를 보낸 뒤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에 한통의 편지를 보내, 그간 절차적으로 사무국에 메일링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지 못한 일에 대한 사정을 알리고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작가회의 내부에서 논의해주실 것을 호소하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신생>의 발행인과 부산작가회의 회장님이 동일인이어서, 저희는 이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사무국을 거치지 않고 자력으로 메일 주소를 모아 회원님들께 편지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하여, 사무국에 이런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게 된 점을 사과하고, 이 문제제기를 공식화할 필요가 있음을 재차 알려드리는 글을 써 보내게 된 것이었습니다. <부산작가회>의 자유게시판에 업로드 된 메일도 있고 또 모른다고도 보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다시 말씀 드리는 것이 절차와 예의에 적합하다고 여겨 저간의 상황과 사정을 써서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무국으로부터 시일이 다소 지난 이후 저희는 한통의 메일로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무국 차원에서 응답을 했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로 저희는 이해했습니다. 응답의 능력이라는 것은 성찰할 수 있는 능력과 수정, 교정의 역량을 갖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즉, 저희들의 어떤 호소에 대해 응한다는 사실은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의 입장을 드러내는 것만이 아니라 <부산작가회의>가 이 문제제기를 나눌 수 있는 울타리가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응답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응한 것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의견을 나누고 조정할 수 어떤 의견이라도 응답이 주어지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 사무국에서 저희가 제기한 문제를 부정적인 방식으로 바라본다고 해도, 저희들은 응답 자체에 큰 진전이 있는 것이라고 여길 수 있었습니다. 그간 <신생>의 공식 입장이 ‘그 어떤 대응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알려왔고, <부산작가회의>에서도 공식적인 입장이 없어 답답했는데, 사무국의 공식적인 입장을 통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사무국의 입장은 긍정적인 것이 아니어서, 저희로서는 마음이 무거웠지만, 공식적인 입장에 대해 저희들의 생각을 다시 전할 수 있어서 반드시 나쁜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무국에서 저희가 보낸 메일에 대한 응답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1. <부산작가회의> 회장님은 ‘신생 사태’에 관해 답할 내용이 없다.

2. 사무국과 어떠한 논의도 거치지 않고 회원들에게 ‘고발’의 형식으로 의견을 표출한 것은 유감이다.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는 문제제기였다.

3. ‘<신생> 사태’가 공론화 하여 논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사무국 차원에서 전체 회원들과 이사회의 논의로 상정할 만한 것은 아니라 판단했다.

4. 두 회원이 제기한 ‘<신생> 사태’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선 <신생> 참여자들의 답변도 필요한데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다. 아울러 ‘<신생> 사태’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문단의 보편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 또한 메일을 통해서는 확인할 수가 없다.

5. 문단의 반응과 회원들의 답변이 있다면 전달하도록 하겠다.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 사무국으로부터의 응답은 사실 궁색한 것이어서 이에 대해 일일이 회원님들께 말할 필요까지 없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사무국의 인식이 <신생>의 입장을 옹호하는 구조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큰 아쉬움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마치 사무국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인 것처럼 사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을 명시하지만 그것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문제제기 자체를 은폐하기 위한 수순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부산작가회의> 회장님의 입장과 <신생> 발행인의 입장이 같을 수는 없으며, 이 양자가 분리될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신생> 발행인의 입장을 사무국이라는 공적 기구를 통해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신생>의 공식입장이 공식적으로 입장을 표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신생>의 입장을 들을 수 없어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지 못하다고 파악하고 그래서 이 문제제기가 적합하지 않다고 규정하는 것은 사무국이 사태 자체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만약 사태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필요하다고 한다면 사무국이 조사를 하거나 진상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입니다만, 그런 절차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저희가 보낸 메일에 대해서만 ‘판단’을 내리고 그것으로 모든 것을 다 했다는 투로 정리해버리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문제제기를 ‘고발’로 규정한 사무국의 태도도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고발이 되기 위해선 ‘처벌’이 가능해야 할 텐데, 그런 처벌이 가능하겠는지요? 저희가 어떤 처벌을 염두에 두고 이런 문제제기를 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도 사실 없습니다. 저희는 오직 공론화만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문학인의 권익 옹호와 복지를 위한 사업”은 부산작가회의의 회칙에 명시되어 있는 사업이고 공론화는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무국에선 부산작가회의 회원의 권리가 강제적으로 침탈된 사안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가지면서 공론화를 거부하는 것은 현재의 <부산작가회의>가 회원들의 권익 보호에 관심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부산작가회의>의 사무국이 회원들의 권리에 대해 이토록 둔감하다는 작금의 상황은 이에 대한 발본적인 고민이 없다면, 얼마든지 이러한 사태가 반복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고 회원들의 권리가 침해되어도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모릅니다.

 

 

<문학톡툭> 이후의 응답에 관하여

하여, 김대성, 김만석 두 회원은 <신생>의 무응답과 사무국의 사실 상 무논리에 가까운 불성실한 입장 표명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이전부터 약속이 되어 있던 <문학톡톡> 행사에 대담/토론으로 참여하게 되어 있어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 회원분들을 마주하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그것은 회원님들께 보내는 메일이나 사무국에 보내는 메일을 쓰는 게 무척 어려웠던 사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렵사리 <문학톡톡> 행사를 마친 이후 뒤풀이에 참석하는 게 어려워, 먼저 자리를 뜨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부산작가회의 회장님으로부터인지, <신생> 발행인으로부터인지, 개인적인 차원에서인지 판단할 수 없지만, 31일에 중앙동에서 만나자는 문자가 온 바가 있습니다. 저희는 이런 문자가 이 사건을 바라보는 현재의 상황을 즉각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나치게 예민한 것이 아니냐고 회원분들께서 생각하실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에 밝힌 것처럼 이 문제는 이미 개인적인 차원의 화해와 같은 문제일 수 없게 되었고 설령 저희와 화해를 한다고 해 이 일이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권리 침해가 발생했다는 것은 제어할 수 없는 권력이 작동하는 것이고 이를 불식시킬 수 있는 문화적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질문하는 것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이전과 다름없이 사적으로, 인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이 문제를 덮으려는 의도 이상일 수 없습니다.

 

저희는 이 문제제기를 부산작가회의가 다양한 분과기구들이 의제화하고 담론화하여 공식적으로 논의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앞으로 저희들은 이 같은 공식적인 메일을 회원님들께 보내는 것을 자제하려고 합니다. 문제제기의 형식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여기시는 회원분들도 계시리라 여겨지고 저희들이 대안을 제시할 것을 바라는 회원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제기와 대안을 등치시키는 논의는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이런 일이 전례 없고/전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반응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다만, 저희가 ‘<신생> 사태’를 공론화 하면서 이를 해결할 대안을 미리 구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일을 거치면서 도착한 여러 이야기들을 꼼꼼히 되짚고 길게 걷다보면, 동료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모쪼록 앞으로 진행될 ‘간담회’나 관련한 이야기가 이루어질 장에 우연히 마주치게 될 때, 함께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긴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 8. 3.

김대성, 김만석 드림.  

ps) <신생> 사태와 관련하여 제1회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관심 있으신 회원들께서는 다음을 참고하여, 참여하시면 좋겠습니다.  

일시 : 2015년 8월 6일 목요일 오후 4시

장소 : 중앙동 또따또가 갤러리

 

 * '부산작가회의' 회원님들께 메일을 보낸 후 저희들은 일주일동안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한국작가회>의 부산지회인 '부산작가회의'에 소속된 회원은 200명이 넘습니다. 현재 회장직을 맡고 있는 분이 <신생>의 발행인기도 한 터라 <신생> 사태로 빚어진 권리 박탈에 대한 문제를 사무국에 직접 요청하는 것이 혹여나 개인을 몰아세우는 일이 되지 않을까 염려 되어 회원들께 직접 메일로 보낸 것입니다. 몇몇 회원분들께서 지지와 응원의 메일을 보내주셨고 사적인 전화나 문자를 보내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신생 사태'를 부산작가회의라는 공적 기구를 통해 공론화하는 것은 요원해보였습니다. 이사회가 소집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사무국에서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들을 수 있었던 반응은 어쩌면 '그 문제가 잘못된 일인 건 알겠는데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냐'와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산작가회의 산하 조직인 청년문학위원회와 지역문학...위원회에 작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어떤 응답도 없었습니다. 저희들은 이 침묵을 필사적으로 이해해야만 했습니다. 그 침묵 속에 잠정적인 동료가 있었고, 그 침묵으로부터만 어떤 응답이 도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회원들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은 '말 하지 않음'이라는 묵살을 위한 침묵과 '말 할 수 없음'이라는 구조적으로 강요된 침묵의 거리를 가늠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안 될 거라 서둘러 냉소해서도 안 될 것이고, 당신은 어째서 아무런 말도 없는 것이냐 힐난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무작정 기다렸고 잠깐 절망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메일을 썼습니다. 동어반복적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어떤 응답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리는 아래와 같은 메일을 썼습니다. 이 메일을 쓰면서 지역 문학판에서 자행되고 있는 개인에 대한 권리 침해와 박탈을 보호하고 해결할 수 있는 조정기구 및 협의기구가 절실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새기게 되었습니다.

 

<부산작가회의> 회원님들께 올리는 두 번째 글

1.

안녕하세요. <부산작가회의> 회원님들께 다시 메일을 보내게 된 비평 분과 회원 김대성, 김만석입니다. 저희 두 사람은 지난 2015년 7월 14일 시전문계간지 <신생> 구성원들의 비민주적인 공모로 인해 부당하게 편집위원 권한을 박탈당한 일을 문건으로 작성하여 <부산작가회의> 회원님들께 보내었습니다. 그 이후 고작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한 달이 훌쩍 넘어버린 것처럼 길고 긴 시간을 견딘 것만 같습니다. 그간 특정 잡지 내부에서 발생한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권한 박탈을 공론화하고 <부산작가회의>라는 공식 기구에 이 사태를 알려 문제 해결을 위한 의견을 모으고자 한 일련의 과정이 꽤 이례적인 일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들은 이러한 부당한 사태가 부산 문학장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여러 차례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권한을 박탈하거나 정신적/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일들이 있어 왔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저 짐작 밖에 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문제들이 공론화 되지 못하고 사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희들의 이 문제제기가 부산 지역 내부의 불합리한 논의 구조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비민주적인 절차와 폭력 행사를 해결하거나 중단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후 다른 곳에서, 다른 매체에서, 다른 모임에서 또 다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사태를 홀로 감내해야 하는 이들이 저희들처럼 참담함 속에 고립되지 않을 수 있도록 작은 매듭을 만드는 일을 늦었더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생>에서 자행된 비민주적이고 폭압적인 권한 박탈과 권리 침해에 관해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무척이나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동시에 ‘사람의 평판’을 무엇보다 중요 시 하는 부산 문단에서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세력에 대해 문제제기 한다는 것은 더 큰 폭력을 당할 수도 있으며 철저하게 고립될 수도 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부끄러움과 이후에 닥칠지도 모를 유무형의 폭력을 무릅쓰고 <부산작가회의> 회원님들께 간곡히 호소한 것임을 다시 한번 알아주시기를 바라면서 저희들의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

다행히 몇몇 회원님들께서 사태의 심각성에 동의해주셨고 응원과 지지의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신생> 사태를 <부산작가회의>라는 공식 기구를 통해 공론화 한 이유는 그저 ‘폭로’나 ‘고발’을 위한 창구로 활용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저희들은 <부산작가회의>라는 공식 기구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며 그 이후 일련의 반응 속에서 부산 문단을 대표하는 이 기구의 기능과 역할을 확인하고 또 그것이 제대로 작동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다행히도 <부산작가회의>의 주체인 회원님들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고 저희에게 말씀을 건네주시고 이 심각한 사태에 감응해주셨기에 작은 희망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점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이 본 작은 희망은 <신생> 사태를 공론화 할 수 있다는 것이라기보다 <부산작가회의>라는 기구가 회원들의 의견과 입장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발견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3.

회원님들께 메일을 보내고 며칠 후 <부산작가회의>의 회장님과 사무국에 <신생>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 알리고 회원의 권리가 부당한 권력 앞에 침탈당한 이 문제를 의제화 해주실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습니다만 아직 아무런 응답을 듣지 못한 상태입니다. 아울러 수백 명의 회원님들께 메일을 보냈음에도 앞서 응답해주신 몇몇 분들을 제외하고는 아직 충분한 응답을 듣지 못한 실정입니다. 저희들은 회원님들 모두가 <신생> 사태가 잘못된 것이라는 의견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해주기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산 문단에서 자행된 이 부끄럽고 참혹한 사태가 남의 집 싸움이 아니라 권력을 남용하여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인 폭력을 자행한 것에 대한 회원님들의 구체적인 생각과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야말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따름입니다. 말을 하는 것은 작가의 소명이고, 그것을 포기한 문학 집단이나 공동체란 자기 주체성을 상실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에서는 어떤 의견이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만 불행히도 아직 아무런 응답이 없는 실정입니다. 물론 <신생> 사태에 <부산작가회의>의 서정원 회장님이 관련 되어 있기에 의견을 피력하시기가 용이하지 않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산작가회의> 회장직과 <신생>의 발행인은 엄연히 다른 지위와 역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저희들이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자명한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부산작가회의> 회원의 권익을 보호하고 그것을 지켜줄 의무가 있는 회장님과 사무국에서 공식적인 의견을 모으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해도 지금까지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공식 기구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이후 <신생> 사태와 유사한 일들이 다시 자행되었을 때 <부산작가회의>에 소속되어 있는 회원들의 권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사무국의 대응과 응답이 절실하게 필요한 실정입니다. 회원들의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묵살한다는 것은 회원들의 권리를 묵살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희 두 사람은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이 회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권리를 지키는 기구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부디 이 믿음을 의심하거나 저버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4.

아울러 이 사태의 중심에 놓여 있는 <신생>의 발행인(서정원), 편집인(이규열), 편집주간(김경복), 편집위원(김수우, 김참, 이성희, 황선열), 편집장(이은주)께서도 모르쇠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뒤늦게라도 입장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이나 회원님들께라도 이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혀주시면 ‘폭로’와 ‘고발’이 아닌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부산작가회의> 회원님들께서도 저희에게 직접 의견을 전하시기 저어되신다면 회장님을 비롯한 사무국에라도 의견을 전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부산작가회의> 산하에 크고 작은 모임과 기구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 각각의 소모임에서도 의견을 모아주시기를 바라고 논의된 내용을 공식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부산작가회의> 회원인 저희 두 사람의 권리가 부당한 공모로 인해 침해당한 ‘사태’를 알리는 것은 저희들의 몫이겠지만 그것을 ‘사건화’ 하는 것은 <부산작가회의>의 회원님들과 <부산작가회의>라는 공식적인 기구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하다 생각합니다. 저희 두 사람에 의해 공론화된 <신생> 사태가 단순히 저희 두 사람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일이 아니라 <부산작가회의>의 모든 회원님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사례로 여겨주시기 바라고 이 사태를 해결해가는 과정 속에서 <부산작가회의>라는 기구의 가능성과 한계 또한 부족하나마 가늠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5.

<부산작가회의> 회원인 김대성/김만석의 권리를 부당한 공모를 통해 박탈한 <신생> 사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어쩌면 저희들이 미처 짐작하지 못하는 저간의 사정과 내용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사태를 공론화하고 문제제기 하는 것은 순전히 저희 두 사람에게 행해진 부당한 권한 침탈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권력 남용에 의한 것임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두 사람은 많은 것을 포기하고 <신생> 사태를 공론화한 것입니다. 이후 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더 큰 상처를 입게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각오하고 있습니다. <부산작가회의>를 통한 <신생> 사태의 공론화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저희들은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들이 중단한다면 비정상적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기는 기구들과 개별자들의 권리를 침해당함에도 그 누구도 문제제기 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부산 문단의 풍조가 더욱 공고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모(不毛)란 혜택을 받지 못했거나 상대적인 박탈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영토’가 속절없이 ‘사막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저희들은 부산 문단이 <신생> 사태를 해결하고 자성할 수 있는 능력을 너끈히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6.

불편할 수도 있는 내용을 거듭 보내게 되어 송구합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부산작가회의> 회원님들의 고견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무국의 의견 또한 경청하겠습니다. 저희들은 지역문화 민주주의가 침탈당하고 붕괴되는 <신생> 사태와 같은 문제를 의제화 하여 논의를 지속해나가고자 합니다. 언론을 비롯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여 이 사태를 알리고 간담회, 토론회, 집담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하여 현장에서 각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의 목소리를 모을 계획입니다. <부산작가회의> 회원님들과도 이 일련의 작업을 함께 해나가고 싶습니다. 의견을 주시면 경청하여 반영할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다시 소식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2015. 7. 21

<부산작가회의> 회원

김대성, 김만석 드림

 

 

 

 

부산작가회의 회원님들께 호소합니다. 

 

부산작가회원님 여러분 안녕하세요. 비평 분과 회원 김대성/김만석입니다.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의 이름으로 모든 회원님들께 이런 메일을 쓰게 될 거라 생각해본 바 없었으나 오늘 저희들은 부산작가회원님들께 전례 없는 방식으로 간곡한 호소를 하고자 이렇게 메일을 보내드립니다. 

 

김대성/김만석은 각각 2010년부터 시전문계간지 <신생>의 편집위원으로 일을 해왔습니다(김대성은 2008년부터 편집장 역임 이후 편집위원). 역사와 전통이 있는 매체의 일원으로 그간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고 이룬 성과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난 7월 1일 <신생>의 발행인(서정원)으로부터 ‘편집위원 일을 그만 두었으면 한다’는 의견을 전달 받았습니다. 내부 회의를 통해 그렇게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김대성/김만석은 두 사람을 제외한 상태에서 결정된 이 사안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으며 어째서 이런 방식으로 의견을 전달하는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만두었으면 한다는 결정의 이유는 ‘마음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설사 그렇다 해도 엄연히 편집위원 일을 해오고 있는 두 사람을 제외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이 논의가 공식화된 의견으로 둔갑하여 일방적으로 통보될 수 있다는 사실에 참담함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런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의견이 도출되고 그것을 당사자들을 불러내 일방적으로 통보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묻고 또 물었지만 그 질문은 이미 벌어진 사태를 돌이키거나 수습하는 데 무력할 뿐이었습니다. 이 의견을 전달받으면서 참담했던 것은 부당함에 대한 상처뿐 아니라 함께 일구어온 매체와 그 구성원에 대한 부끄러움이 더해진 것이었습니다. 부당함에 대한 호소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부산작가회원님 여러분께 호소하고자 이 메일을 쓰게 되었습니다. 

 

김대성, 김만석은 <신생> 편집위원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활동을 해왔습니다. 5년 이상의 시간을 <신생>에서 불가능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해왔습니다. 지역 잡지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지역의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돋을새김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형용할 수 없는 비용들을 치르고 많은 시간들을 보내왔습니다. 어쩌면 이런 저간의 사정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 지역에서 잡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저 모든 태도가 조건으로 요청되는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내용을 굳이 밝히는 것은 이 무상의 노동이 투여되는 시간에 대한 보상 때문이 아니라 그 시간 자체를 부정해야하는 순간 앞에 강제로 도착해야 한다는 참담한 현실을 엄정하게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슬프고 참담한 일이지만 <신생>의 편집인(이규열)과 발행인(서정원) 그리고 편집주간(김경복), 편집위원들(김수우, 김참, 이성희, 황선열)이 김대성/김만석을 제외한 자리에서 두 편집위원들을 일방적으로 내쫓는 일이 일어났습니다(부득불 구성원들의 이름을 병기한 것은 실명을 공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생>이라고만 표기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오해를 조금이나마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1999년 창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신생>을 위해 애를 쓰셨던 많은 분들이 계셨고 지금은 <신생>이 아닌 다른 자리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계신 줄로 압니다. 한 때 <신생>과 함께 하셨던 그 분들의 이름이 혹여나 오해를 받지나 않을까 염려하기 때문임을 헤아려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부끄러운 일을 알리는 것은, 두 사람의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무릅쓰고서라도 이 사태를 알리는 것은 그저 개인의 억울한 사정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은 물론이거니와 한국문학 전체에서도 ‘거론’된 바 없던 내부의 비민주적인 공모 구조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로 구성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저희들이 느끼는 참담함과 부끄러움은 수치심을 느낄 정도로 형편없는 방식으로 내쫓겼다는 것이 공론화된 방식으로 노출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만이 아니라, 지역 잡지의 주요한 축을 담당했던 <신생>의 논의구조가 이 정도 밖에 되지 않음을 지각하고 그것을 내부적으로 정화하지 못하고 외부에 공개해야만 하는 한계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부기해둡니다. 뿐만 아니라, 저 황망한 사태를 그냥 황망하고 비참한 일을 당했다는 수동적인 경험이나 사적인 일로 묻어야 할 것이 아니라 공적인 문제로 옮겨두지 않는다면 이런 일들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발생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내부적인 것으로, 사적인 것으로, 인간관계의 갈등으로 사소화 할 때 이후 다시 발생할 이러한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권리를 박탈하는 폭력에 어떤 개인들은 홀로 참담함과 상처를 감내하는 일을 거듭해야 할 것입니다. 

 

설사 김대성/김만석이 납득할 수 없다 해도 당사자가 참여한 자리에서 이러한 논의가 이루어졌다면 두 사람이 편집위원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절차를 내부적으로 진행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처음 발행인으로부터 편집위원들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중국집에서 전해 듣게 된 강제 퇴출의 결정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 역시 아무리 열심히 생각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맞지 않아서’라는 이유가 전부였습니다. 물론 감정적이고 심정적인 내용만을 전달하게 된 저간의 맥락이나 사정 또한 있을 줄로 압니다. 그럼에도 편집위원 가운데 가장 연배가 낮은 두 편집위원들에게 저런 표현을 쓰면서 강제로 사퇴를 종용하는 방식을 취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문제는 사퇴 공모와 강제 사퇴 요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저 태도가 아주 자연스러운 합의(공모)를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신생>이라는 지역 잡지의 현재적 상황이라는 하겠습니다. 지역 문학의 현재를 이끌어가고 있다 자부하는 집단 내부에서 편집위원의 권한을 강제적으로 박탈하는 폭력적인 방식으로만 내부 합의를 이끌어낸다는 사실은 지역이라는 열악한 지반 아래에서 분투하며 문학적, 문화적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에게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희들이 <신생> 사태를 부산작가회의 회원님들께 알리고 것은 <신생>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집단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신생>이 특정 개인의 소유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지역을 거점으로 긴 시간을 이어오며 무엇보다 지역의 가능성과 가치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해왔다는 점에서 공적인 매체의 자리에 놓여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만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이와 같은 일에 대해 대응하고 또 응답할 수 있는 방식이 생길 것이라는 판단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 하기 위해 부산작가회의 회원님들께 메일을 보내는 것임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내부적으로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었는가, 궁금히 여기실 줄로 압니다. 김대성/김만석은 지난 7월 6일 위와 같은 사안에 대한 부당함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슬픔과 참담함 속에서도 이러한 비민주적인 절차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내용을 작성하여 현재 <신생> 구성원 모두에게 메일로 보낸 바 있습니다. 그 어떤 응답도 없었으며 7월 8일 편집주간님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을 뿐입니다.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겠으니 만나자는 용건의 내용이었으나 그것은 메일로 요청한 사안에 대한 응답일 수 없으며 그 또한 일방적인 통보의 방식과 다르지 않은 것이었으므로 저희들은 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최소한의 사과나 해명 없이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를 다 설명해주겠다’는 말을 듣기 위해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아울러 <신생> 구성원들은 메일에 대한 그 어떤 응답도 하지 않는 것을 방침으로 합의했다는 내용만 전달 받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성급히 외연화 한 것은 아닌가 의구심을 가지시는 분들도 있을 줄로 압니다. 저간의 사정을 상세히 다 설명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위와 같은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간곡한 시도가 있었음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들은 이 사태가 부산 문단에서 발생한 문제라 판단했고 더군다나 현재 <신생>의 모든 구성원들이 부산작가회의 소속이라는 점에서 이 사건을 공적인 것으로 외연화 할 때 가장 먼저 부산작가회의라는 공식 기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희 두 사람이 처한 곤혹한 상황을 외연화 했을 시 혹여나 부산문단에 오점을 남기지는 않을까, 지역 문단에 안 좋은 인상을 주지 않을까 심히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우선 지역 문학 장 내에서 발생한 이런 일들을 지역 문학 장 내에서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논의 구조를 도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이 발생해서는 안 되는 성질의 것이었다면, 이미 벌어진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역 문학 장 내의 자정능력을 확보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줄이고 줄였음에도 지나치게 길게 여겨졌을 <신생>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한 회원님들의 고견을 구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냐’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을 듯합니다. 편집위원을 사퇴를 할 수 없다면 그걸 우리보고 어쩌라고 메일을 보내느냐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대로 이 일이 단순히 부산의 한 잡지의 편집위원들 사이에서 일어난 나쁜 전례가 아니라, 부산의 문학 장이 겪고 있는 일이며 해결해야 할 일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오랜 시간 애를 써왔던 시간들과 일구었던 장소에서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권리를 박탈하는 이러한 행위는 노동현장이든 문화현장이든 어디에서든 용납될 수 없는 사안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이라면 응당 지녀야 할 가치들을 발굴해 나가고 생태적 가치관을 문학적으로 수행하려는 <신생>이라면 더욱 더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분투해야 하지만 도리어 ‘마음이 맞지 않는다’는 자의적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는 부당한 이유로 두 편집위원의 권리를 무자비한 방식으로 박탈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믿기 힘들기만 합니다. 부산작가회의에 소속된 회원들이 그 역사와 현재의 가치를 지키고 미래에 대해 자부심을 갖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비민주적인 강압에 의해 권리를 박탈당한 문제에 대해 자정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혜안이 마련될 거라 생각합니다. 다시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일은 두 사람이 <신생>이라는 잡지의 편집위원으로부터 강제 사퇴된 것이 아니라 비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의견을 도모하며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관행이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에 대한 공식적인 문제제기이며 이러한 관행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호소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이 문제를 <신생> 내부 차원에서 논의할 수도 없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차단되어버린 상황인 터라 부산작가회의라는 공식적인 기구를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한 절차를 밟아나가고자 합니다. 사무국에 알려 이 문제를 검토한 뒤 회원님들께 전달하는 것이 절차적으로 옳다는 것을 아오나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 직접 메일로 내용을 전하게 됨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저희들의 간곡한 호소를 내버려주지 마시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견이나 부산작가회의라는 기구를 통해 논의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추후 회원님들의 고견을 경청하여 후속 논의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15. 7. 14일 화요일

부산작가회의 회원

김대성 / 김만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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