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재개발 사건 일지
―<신생> 사태와 지역의 문화적 제도와 실천들
* 이 일지는 하나의 사건 연대기이다. 이 연대기를 기록하는 것은 이른바 ‘<신생> 사태’가 지역 내부에서 여전히 내부 갈등으로만 치부되고 있는 터라 논의 자체가 진행되지 않고 사적인 자리에 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논의 자체를 하지 않거나 할 수 없게 만드는 묵살의 구조에 대한 대응을 우리는 사건의 연대기 기록을 통해서 해나가고자 한다. 이 연대기 속에서 포착되지 않는 세세한 과정들도 서술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러한 사정들은 <로컬데모>의 간담회와 다양한 글쓰기들을 통해서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간략한 기술로 대신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연대기에 들어올 수 없는 다양한 시간들과 사건들이 비슷한 시공적인 특성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고 해도, 접속하여 지도를 그려나갈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사건의 연혁과 경험들을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도록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 더 풍성한 지도가 그려지기를, 여러 개의 또 다른 사건일지가 중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그 속박된 자리에서 벗어나 ‘지역’을 드디어 ‘발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가능성이 고작 이러한 조건에서 출발하는 것은 그저 슬픈 것이 아니라 ‘시작’을 위한 기초를 이룬다는 차원에서 언제나 새로운 만남을 이룰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2015년
6월 25일 목요일
김대성, 김만석의 <신생> 마지막 편집회의. 편집장으로부터 6월 22일 월요일 “선생님, 이번 주 목욜 6시 30분에 편집회의가 있습니다. 신작시, 특집시 추천할 분과 기획특집, 르포, 풍경, 이 한 편의 시, 서평 생각해 오십시오.”라는 내용의 문자 모든 편집위원들에게 일괄적으로 전달. 이 날 편집회의 마치고 김대성, 김만석은 저녁만 같이 먹고 2차 술자리엔 동석하지 않고 귀가.
6월 26일 금요일
발행인 서정원은 전화로 편집위원 김만석에게 연락을 하여, 중앙동에서 보자고 한 뒤, 김대성에게도 시간과 장소를 알리고 문자로 연락을 주겠다고 한 뒤, 오전 11시 46분 “7월 1일 오후 7시 중앙동 홍문에서 보자”라는 메시지를 수신.
7월 1일 수요일
중앙동 중국음식점 ‘홍문’에서 발행인을 만나 저녁 식사를 주문. 왜 보자고 한 것인지 영문을 모르는 두 편집위원 김대성, 김만석이 재차 오늘 회합의 목적을 묻게 됨. 발행인이 편집위원들 모두의 동의에 의해 김대성, 김만석이 더 이상 <신생> 편집위원이 아니라고 알림. 그 자리에서 발행인에게 김대성, 김만석이 곧바로 항의하고, 이유를 물었으나 발행인은 “마음이 맞지 않아서”라고 대답함. 자리를 옮겨 다시 항의를 했으나 결정은 내려진 것으로 기정사실로 반복할 뿐이었음. “그만 두는 게 너희들에게도 좋다”는 모호한 이야기를 통해 구성원 모두가 동의한 것이라고 알림.
7월 5일 일요일
<신생> 구성원 모두에게 김대성, 김만석의 편집위원 권리 박탈에 대한 문제제기를 담은 메일을 발송. 편집위원 권리에 관한 사안이 당사자인 두 사람을 배제한 자리에서 일종의 공모의 방식으로 합의되어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은 평등해야 할 편집위원 체제가 왜곡된 것이기에 그러한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한 발행인뿐만 아니라 편집인과 편집주간의 사과와 해명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요구하는 메일을 발송.
7월 8일 수요일
<신생>의 편집주간으로부터 김대성, 김만석의 공식적인 항의 메일에 대해 ‘공식적으로 무대응’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을 개별 전화 통화로 알린 후 공식적인 입장을 피력하지 않음. 무대응이라는 무시와 묵살의 구조 아래에서 두 사람의 편집위원 권리 박탈이 필연적으로 내부 갈등으로 축소될 것이라 판단하고 그럴 때 이른 바 개인에 대한 ‘품평론’으로 흐르게 될 것임이 예상되었기에 이를 사적인 갈등 문제로 축소하거나 희석시킬 수 없다고 판단해,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의제화 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판단을 내림.
7월 14일 화요일
부당한 권리 박탈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조차 지역 내부에선 너무 많은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으나 지금의 우리뿐만 아니라 과거의 누군가가, 또 미래의 누군가 또한 이와 같은 권리 박탈이 반복될 것이 뻔하기에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로 결정. 그 첫 번째 단계로 <부산작가회의> 회원들에게 이 사태를 알리는 호소 메일을 보냄. <부산작가회의> 회원들에게 메일을 보내야 했던 것은 <신생> 발행인과 부산작가회의 회장이 동일 인물이어서 이에 대한 부담을 가질 것에 대한 배려의 차원에서 사무국을 거치지 않고 두 사람이 회원들에게 ‘호소문’을 보낸 것임. 이를 <부산작가회의>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도 업로드 함(이후 <부산작가회의>에 보낸 호소문과 경과보고 등은 자유게시판에 업로드).
7월 17일 금요일
<부산작가회의> 회원들에게 보낸 이후로도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없어, 공식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응답해줄 것을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에 공식적으로 알림.
7월 21일 화요일
부산작가회의 회원들에게 보내는 두 번째 메일을 작성하여 보냄. 사건에 대해 다시 설명하고 진행된 사안에 대해 경과보고를 함.
7월 21일 화요일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의 공식 답변이 도착. 답변의 내용은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신생> 측의 내용을 듣지 못해 의제화가 어렵다고 아주 간략하게 답함.
7월 23일 월요일
<부산일보>와 <국제신문>에 <신생>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리고 후속 취재 후 연락하겠다고 전함. 두 사람의 일방적인 권리 박탈과 지역문학 기구의 침묵과 묵살이 암묵적인 동조 구조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판단하고 이러한 권리 사각지대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 아래에 지역문화예술인들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협의기구를 구성할 필요성을 느낌. <로컬데모>(LOcal CULture DEMOcracy)라는 이름의 협의 기구를 발족. <로컬데모>의 공식적인 활동과 방향을 논의하고 결정. <로컬데모 : 인적 재개발에 저항하는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연속간담회>로 가닥을 잡음. 첫 번째를 여는 차원에서 김대성, 김만석 그리고 이와 유사한 경험을 했던 박진명(전 금정구 예술공연지원센터장)을 섭외.
7월 26일 일요일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의 공식 답변에 대한 문제제기의 메일을 보냄. 이후 사무국의 공식적인 응답은 없는 상태.
7월 27일 월요일
<부산작가회의>에서 주관하는 행사인 ‘문학톡톡: 조갑상, 『다시 시작하는 끝』’(중앙동, 자유바다소극장) 토론자로 김만석이 섭외되어 있어 참여. 부산작가회의 회원들이 이 사안에 대해 유쾌한 반응도 보였지만 여전히 말을 아끼고 있는 상태. 행사 마친 후 뒤풀이 참석을 하지 않음.
7월 28일 화요일
오전 10시 44분 경 서정원 발행인으로부터 “31일 시간되면 만났으면 한다. 중앙동에서. 답을 기다리겠다”고 하여, 편집위원 권리박탈의 경우와 유사한 방식의 만남이니 공식적인 것인가, 비공식적인 것인가에서부터 목적이나 이유 등을 문자로 문의했지만, 응답이 없었음.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음. 사실 이러한 문제를 실질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것은 편집인과 편집주간이어야 함.
8월 4일 화요일
<로컬데모 : 인적 재개발에 저항하는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연속간담회>(1)에 관한 언론 보도문을 배포하고 이 사안을 문학 장 내부의 문제가 문화적 실천들 전체가 경험하는 문제라고 판단하여 문제의식을 보다 더 확대하고자 함. 두 사람의 이름을 지속적으로 쓰는 것보다 새로운 명칭을 고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로컬데모>를 공식적인 명칭으로 활용. 한국작가회의와 부산문화재단 홈페이지 등에도 관련한 내용을 업로드 함.
8월 6일 목요일
중앙동 <또따또가 갤러리>에서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참석인원 24명과 더불어 제1회 간담회를 진행. 김대성, 김만석, 박진명 세 사람들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해 참여자들의 의견과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됨. (이에 관련한 자세한 사정은 녹취록을 통해서 공개)
8월 17일 월요일
부산대학교에서 본관에서 일어난 고 고현철 교수님의 투신과 사망으로 <로컬데모>의 진행을 멈추고 애도에 동참. 그가 남긴 “무뎌짐”과 “사회적 민주주의”라는 날카로운 어휘를 만나면서, 현실이 부과하는 다종다양한 모욕들의 강도에 대해 놀라고 슬퍼함. 그가 남긴 유지가 날카로움과 사회적 민주주의의 구성이라면, 그의 말이 살아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남은 자들의 몫이라면 그것은 모두의 몫이라고 할 수 있음.
8월 24일 월요일
<부산일보>와 <국제신문>에 후속 취재가 이루어지지 않아 연락을 취했지만, ‘취재’ 계획 없음을 알림. 이 문제를 의제화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분투했지만, 궁극적으로 소문과 풍문으로 유통되는 과정들만이 지배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 지역에서 권리박탈에 관한 사안이 발생하고 이를 살펴볼 수 있는 공식기구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을 때, 침묵이 강제되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논리들은 ‘개인적인 품성’ 문제로 귀착한다는 것을 새삼스레 확인하게 됨. 이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대안적 미디어를 고민하게 되었고 향후 무크지 발간을 계획하게 됨.
8월 27일 목요일
제1회 간담회에 대한 평가회 오후 3시에서 6시까지 남포동 <커핀그루나루> 3층에서 진행. 총 12명 참여. <로컬데모>라는 모임을 어떤 방식으로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현재 이 사안에 대한 지역에서의 일반적인 반응과 대응 양상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에 양 측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간담회 자리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논의 됨.
<로컬데모>의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loculdemo) 개설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