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생 사태'의 공론화를 시발점으로 지역문단의 수직적 위계 구조와 개별자들을 마치 부품처럼 쓰고 버리는 '인적 재개발'에 대한 문제제기는 없던 무언가는 발명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있지만 작동하지 않는 장치의 스위치는 켜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도와 시스템은 개인을 속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닫힌 문을 두드리는 일이었고 그렇게 깨우는 일이었으며 스위치는 켜는 일이었습니다. 제도의 장치를 하나 하나 확인해야 했던 시간. 그 묵묵부답의 시간 속에서 보이진 않지만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는 낙후되고 쇄락한 제도의 민낯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문제제기에 대한 묵살이 곤궁한 것이 아니라 막무가내식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저희들은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에 '<신생> 사태'를 회원들의 권리를 침탈한 사안으로 개입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간 아무런 반응이 없던 사무국으로부터 한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만 그 내용의 무성의함과 빈곤함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한숨은 30년의 역사를 가진 부산작가회의라는 공적 기구가 한낱 개인의 결정과 판단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며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자 하기에 이 사안에 개입할 수 없다는 사무국의 궁색한 답변이 결국 '신생'을 비호하기 위한 논리와 다르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무대응'을 원칙으로 하는 '신생'의 입장을 알 수 없으니 저희들의 문제제기가 성립할 수 없다는 사무국의 답변. 현재 <부산작가회의>의 회장이 <신생>의 발행인인데 그 입장을 들을 수 없으니 개입할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아무렇지 않게 공식적인 입장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막무가내식의 무성의함과 안타까운 빈곤함을 마주하며 쓴 메일입니다.

 

부산작가회의 회원님들께 드리는 세 번째 글

  

감사의 말씀

모두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비평분과 회원 김대성, 김만석입니다. 폭염이나 염천이라는 말이 절로 실감나는 시간입니다. 안부를 여쭙는 일이 반드시 필요할 정도로 더위가 심신을 지치게 만드는 날이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선지 ‘<신생> 사태’에 관한 경과보고를 하는 게 주저되기도 합니다만, 젊은 두 회원의 호소와 보고에 지지를 표해주신 회원님들이 계시다는 생각에 편지를 보내기로 결정하고 향후 과정에 대해서도 들어주시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집중력이 마냥 흐트러지고 무기력이 기후로 엄습하는 가운데, 대면하기 싫은 현장을 자꾸 바라보게 만들어드리는 듯해 죄송하지만 몇 차례 간곡하게 말씀드린 것처럼 이 유례없는 일을 어쨌든 매듭짓지 않고서 그냥 지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 과정이 저희 두 사람과 <부산작가회의> 그리고 지역 문학 장에 남겨질 역사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를 정직하게 짚지 않는다면 유야무야로 지워질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이 문제제기는 단순히 개인적인 불우함이나 분노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또 어떤 진영을 구분하여 세력화하고 적대를 만들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다만 <신생>에서 편집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는 와중에 그로부터 일방적으로 권리를 박탈당하는 비민주적인 공모가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자연스럽게 여겨진다면, 잘못되었다는 것은 감지하지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는 식의 무의식적인 공모의 문제를 바로 잡지 않고서는 앞으로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심각한 문제를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신생>의 편집인이나 발행인, 편집주간이 편집위원의 권리를 함부로 제한하고 박탈하는 데에도 그것이 문제로 여겨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래도 상관없다는 무의식이 형성되어 있는 이러한 조건들을 문제화 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모색이 그간의 지역 문학장의 역사에서 찾기 힘든 형편이라면, 이 기회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문화적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실감’할 수 있는 공통의 기회로 여겨졌습니다.

 

문학적 실천들이 당면한 삶의 조건과 불화하고 현실적 논리의 이면을 다양한 글쓰기 형식을 통해서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때, 저희들로서는 우리에게 닥친 이 일을 힘겹지만 드러내어 공론화 하는 것이 스스로를 부정하거나 부인하지 않는 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을 각자의 양심의 문제로, 그래서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놓아두어서는 안 되고 의제로 만들어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차대한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저 문제제기가 저희만의 것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제제기가 있기 전에 저런 일이 벌어졌을 때, 어쩔 수 없다고 판단되거나 발행인이나 편집인, 편집주간이 그러한 방식의 권력을 행사해도 도리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해하는 무의식적인 인식이 있어왔다면 그러한 흐름을 저지하는 것은 저희 둘에게만 해당되는 일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신생>으로부터 이 일에 대한 공식적인 의견을 들을 수 없게 되어, 부산작가회의 회원님들에게 호소문을 보내드리게 된 것도 이런 사정에서 비롯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이 일을 <부산작가회>의 전체에 고발하고 <신생>의 발행인과 편집인, 편집위원, 편집장을 처벌해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이 일이 바로잡힌다고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가능하다면, 부산작가회의 내부에 이러한 문제들을 검토할 수 있는 상설기구나 현재 위원회들이 이를 논의하고 공론화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질적인 해결이 아니라고 해도 이 문제제기를 <부산작가회의>에서 수용하고 이 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대응하는 것만이라도 큰 성과라고 이해되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라도 응답이 이루어진다는 건 수정, 교정 그리고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으로부터의 응답에 대하여

저희는 회원님들께 두 번째 편지를 보낸 뒤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에 한통의 편지를 보내, 그간 절차적으로 사무국에 메일링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지 못한 일에 대한 사정을 알리고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작가회의 내부에서 논의해주실 것을 호소하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신생>의 발행인과 부산작가회의 회장님이 동일인이어서, 저희는 이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사무국을 거치지 않고 자력으로 메일 주소를 모아 회원님들께 편지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하여, 사무국에 이런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게 된 점을 사과하고, 이 문제제기를 공식화할 필요가 있음을 재차 알려드리는 글을 써 보내게 된 것이었습니다. <부산작가회>의 자유게시판에 업로드 된 메일도 있고 또 모른다고도 보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다시 말씀 드리는 것이 절차와 예의에 적합하다고 여겨 저간의 상황과 사정을 써서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무국으로부터 시일이 다소 지난 이후 저희는 한통의 메일로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무국 차원에서 응답을 했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로 저희는 이해했습니다. 응답의 능력이라는 것은 성찰할 수 있는 능력과 수정, 교정의 역량을 갖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즉, 저희들의 어떤 호소에 대해 응한다는 사실은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의 입장을 드러내는 것만이 아니라 <부산작가회의>가 이 문제제기를 나눌 수 있는 울타리가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응답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응한 것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의견을 나누고 조정할 수 어떤 의견이라도 응답이 주어지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 사무국에서 저희가 제기한 문제를 부정적인 방식으로 바라본다고 해도, 저희들은 응답 자체에 큰 진전이 있는 것이라고 여길 수 있었습니다. 그간 <신생>의 공식 입장이 ‘그 어떤 대응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알려왔고, <부산작가회의>에서도 공식적인 입장이 없어 답답했는데, 사무국의 공식적인 입장을 통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사무국의 입장은 긍정적인 것이 아니어서, 저희로서는 마음이 무거웠지만, 공식적인 입장에 대해 저희들의 생각을 다시 전할 수 있어서 반드시 나쁜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무국에서 저희가 보낸 메일에 대한 응답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1. <부산작가회의> 회장님은 ‘신생 사태’에 관해 답할 내용이 없다.

2. 사무국과 어떠한 논의도 거치지 않고 회원들에게 ‘고발’의 형식으로 의견을 표출한 것은 유감이다.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는 문제제기였다.

3. ‘<신생> 사태’가 공론화 하여 논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사무국 차원에서 전체 회원들과 이사회의 논의로 상정할 만한 것은 아니라 판단했다.

4. 두 회원이 제기한 ‘<신생> 사태’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선 <신생> 참여자들의 답변도 필요한데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다. 아울러 ‘<신생> 사태’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문단의 보편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 또한 메일을 통해서는 확인할 수가 없다.

5. 문단의 반응과 회원들의 답변이 있다면 전달하도록 하겠다.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 사무국으로부터의 응답은 사실 궁색한 것이어서 이에 대해 일일이 회원님들께 말할 필요까지 없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사무국의 인식이 <신생>의 입장을 옹호하는 구조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큰 아쉬움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마치 사무국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인 것처럼 사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을 명시하지만 그것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문제제기 자체를 은폐하기 위한 수순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부산작가회의> 회장님의 입장과 <신생> 발행인의 입장이 같을 수는 없으며, 이 양자가 분리될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신생> 발행인의 입장을 사무국이라는 공적 기구를 통해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신생>의 공식입장이 공식적으로 입장을 표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신생>의 입장을 들을 수 없어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지 못하다고 파악하고 그래서 이 문제제기가 적합하지 않다고 규정하는 것은 사무국이 사태 자체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만약 사태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필요하다고 한다면 사무국이 조사를 하거나 진상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입니다만, 그런 절차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저희가 보낸 메일에 대해서만 ‘판단’을 내리고 그것으로 모든 것을 다 했다는 투로 정리해버리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문제제기를 ‘고발’로 규정한 사무국의 태도도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고발이 되기 위해선 ‘처벌’이 가능해야 할 텐데, 그런 처벌이 가능하겠는지요? 저희가 어떤 처벌을 염두에 두고 이런 문제제기를 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도 사실 없습니다. 저희는 오직 공론화만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문학인의 권익 옹호와 복지를 위한 사업”은 부산작가회의의 회칙에 명시되어 있는 사업이고 공론화는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무국에선 부산작가회의 회원의 권리가 강제적으로 침탈된 사안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가지면서 공론화를 거부하는 것은 현재의 <부산작가회의>가 회원들의 권익 보호에 관심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부산작가회의>의 사무국이 회원들의 권리에 대해 이토록 둔감하다는 작금의 상황은 이에 대한 발본적인 고민이 없다면, 얼마든지 이러한 사태가 반복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고 회원들의 권리가 침해되어도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모릅니다.

 

 

<문학톡툭> 이후의 응답에 관하여

하여, 김대성, 김만석 두 회원은 <신생>의 무응답과 사무국의 사실 상 무논리에 가까운 불성실한 입장 표명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이전부터 약속이 되어 있던 <문학톡톡> 행사에 대담/토론으로 참여하게 되어 있어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 회원분들을 마주하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그것은 회원님들께 보내는 메일이나 사무국에 보내는 메일을 쓰는 게 무척 어려웠던 사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렵사리 <문학톡톡> 행사를 마친 이후 뒤풀이에 참석하는 게 어려워, 먼저 자리를 뜨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부산작가회의 회장님으로부터인지, <신생> 발행인으로부터인지, 개인적인 차원에서인지 판단할 수 없지만, 31일에 중앙동에서 만나자는 문자가 온 바가 있습니다. 저희는 이런 문자가 이 사건을 바라보는 현재의 상황을 즉각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나치게 예민한 것이 아니냐고 회원분들께서 생각하실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에 밝힌 것처럼 이 문제는 이미 개인적인 차원의 화해와 같은 문제일 수 없게 되었고 설령 저희와 화해를 한다고 해 이 일이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권리 침해가 발생했다는 것은 제어할 수 없는 권력이 작동하는 것이고 이를 불식시킬 수 있는 문화적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질문하는 것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이전과 다름없이 사적으로, 인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이 문제를 덮으려는 의도 이상일 수 없습니다.

 

저희는 이 문제제기를 부산작가회의가 다양한 분과기구들이 의제화하고 담론화하여 공식적으로 논의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앞으로 저희들은 이 같은 공식적인 메일을 회원님들께 보내는 것을 자제하려고 합니다. 문제제기의 형식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여기시는 회원분들도 계시리라 여겨지고 저희들이 대안을 제시할 것을 바라는 회원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제기와 대안을 등치시키는 논의는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이런 일이 전례 없고/전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반응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다만, 저희가 ‘<신생> 사태’를 공론화 하면서 이를 해결할 대안을 미리 구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일을 거치면서 도착한 여러 이야기들을 꼼꼼히 되짚고 길게 걷다보면, 동료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모쪼록 앞으로 진행될 ‘간담회’나 관련한 이야기가 이루어질 장에 우연히 마주치게 될 때, 함께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긴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 8. 3.

김대성, 김만석 드림.  

ps) <신생> 사태와 관련하여 제1회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관심 있으신 회원들께서는 다음을 참고하여, 참여하시면 좋겠습니다.  

일시 : 2015년 8월 6일 목요일 오후 4시

장소 : 중앙동 또따또가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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