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6일에 있었던 '인적 재개발에 저항하는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연속 간담회' 1회에 대해 최은순 소설가께서 후기를 작성해 보내주셨습니다.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인 24명과 지역에 만연해 있는 권리 박탈의 구조와 문화예술 활동 속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공론화 하기 어려운 상황, 그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고착시키는 침묵과 묵살의 구조에 관해 세 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세 시간이 아니라 삼일 동안 해도 충분하지 않은 주제임을 알게 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너무 늦게 시작한 대화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내내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가 하겠지', '누군가가 바꾸겠지'라는 생각으로 미루어두었던 이야기를 간담회에 참석했던 모두가 바로 그 '누군가'가 되어 그동안 차마 공유하지 못했던 말들을  나누었습니다. 부산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최은순 소설가께서 간담회의 현장의 안팎과 이후의 평가회까지 관찰자의 눈으로 세심하게 살피고 정성스레 기록해주셨습니다.  

 

 

서로의 말이 놓이는 자리로 가는 발걸음

'인적 재개발에 저항하는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연속간담회(1)'와 '평가회' 후기

최 은 순(소설가)

1.

2015년 8월 6일 중앙동 또따또가 갤러리에서 ‘인적 재개발에 저항하는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연속간담회’ 그 첫 번째가 열렸다. 예정된 간담회 시간은 오후 4시였다. 그 전에 <문학의 곳간> 송진희 선생님으로부터 완월동 일대를 둘러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었다. 완월동을 다시 생각하자는 취지로 진행됐었던 ‘완생 프로젝트’를 계기로 알게 된 동네, 실제로 존재하지만 은폐된 완월동을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흔쾌히 응했다. 오후 한 시 반부터 자갈치역에서 출발해 영업이 행해지고 있는 완월동 일대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무척 더운 날이었고, 두어 번 쉬면서 목을 축이고 복숭아를 나눠먹기는 했지만 찐득하게 살갗을 휘감는 땀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완월동 일대를 둘러보고 중앙동으로 이동하면서 무려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걸었지만 몸이 피곤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간담회가 열릴 또따또가 갤러리로 향하면서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7월 중순, 지역문화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날아든 메일을 읽고 들었던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은 여전했다. 어떻게든 빨리 일이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만 있었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짧았다. 이 때문에지역 잡지 <신생>에서 벌어진 권한박탈과 같은 사례들을 수집하고 이를 공론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모을 예정’이라는 간담회 취지가 부담스럽기도 했다. 말할 수 있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없는 상태에 대한 자괴감과 무력감이 동시에 드는 가운데 간담회에 참석했다.

간담회 장소인 또따또가 갤러리에 도착하고 몸을 낮춘, 쭈뼛쭈뼛한 걸음걸이로 마련된 자리에 가 앉았다. 입구에 마련된 유인물을 가져오고 가방에서 볼펜을 꺼내고 나서야 나는 고개를 들어 갤러리 안을 휘둘러보았다. 대부분 모르는 얼굴들이었고 그 사이로 아는 얼굴이 드물게 있기는 했지만 선뜻 다가가서 인사를 건넬 수는 없었다. 간담회를 열게 된 배경 때문인지 그 만큼 갤러리 안의 분위기는 조용했고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서른 명 정도의 사람들이 참석할 것이란 얘기를 들었을 땐 생각보다 참석인원이 많다는 것에 다소 안심을 했지만 이백 명이나 된다는, 부산작가회의 회원들에게 보냈다는 메일의 수를 감안한다면 결코 많은 인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스테이지에는 ‘신생사태’의 두 당사자 외에 부산청년포럼 사무국장으로 있는 박진명 씨도 함께 했다. 박진명 씨는 금정구 예술공연지원센터장으로 활동했었다고 했다. 그러나 계약만료 통보를 받고 일하고 있던 자리에서 물러나야했다고 했다. 모두발언이 끝나고 객석으로 마이크가 옮겨갔을 때 이렇다 할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통보받았던 여러 사례를 들을 수 있었다. 간담회 안내 메일에서 읽었던 ‘공적인 문제’, 시전문계간지 <신생>으로부터 당한 권한박탈과 계약만료해지통보의 문제가 두 사람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조금씩 실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일이 문단이라고 하는, 적어도 여타의 영역보다는 인간의 자유와 인권,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기 십상인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니 믿기 힘들었다고 해야 하는 것이 맞겠다. 순진한 건지, 무지한 건지. 풍기문란으로 권고사직을 당하고,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개인 사물함의 가방을 함부로 뒤지고 해고를 당하고, 농담이라며 저들끼리 지껄이는 모욕적인 발언들을 고스란히 듣고만 있어야 했던 일 등. 함께 일하던 동료가 당하고 내가 경험했던 일들에 대해서도 아무런 대응 없이 입을 다물고 있었던 지난 날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비겁한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두 당사자들에게 격려의 말과 함께 그럼에도 힘겨움을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활동해 줄 것을 부탁하는 말들이 오갔지만 거의 대부분은 <로컬데모>의 방향성과 단지 개인적인 일로 치부되는 일들을 공론화하기 위한 제안, 협의체를 구성하기 위한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들이 오갔다. 그런 제안이나 의견들의 적절성이나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사람들이 건네는 모든 말들에 고개를 끄덕이며 오히려 신기해했을 뿐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권리를 박탈당하는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왔고 싸워왔던 이력들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분노와 적대감만 있었지 부조리하고 부당한 일들을 오롯이 맞닥뜨리고 대응할 언어가 나에게 없음을 절실히 깨닫기도 했다.

간담회는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나에게 간담회는 신생사태로부터 촉발된 권리박탈의 문제가 결코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시간이었다. 그것은 간담회에 참여했던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러나, 단지 그것뿐이다. 권리박탈과 같은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방안과 방법에 대한 의견이 아직까지는 나에겐 없다. 먼저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이력들, 그들이 깨닫고 실천하고 있는 것들을 듣고 보고 배우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내 몸의 축적돼 있을, 분노와 적대라는 감정으로 뭉뚱그려져있는 일들을 환기하고 더듬어보기도 해야겠다.

개인이 겪은 불우한 일이라는 것을 넘어 문화예술 전반에 만연되고 있다는 것으로 간담회 논의가 시작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개인적인 일인가, 공적인 일인가, 과연 공적인 문제로 전환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으로 논의가 한정된 느낌이 든다.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다음 세대에도 이양될 것이 뻔 한 일들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나온다 하더라도 당장에 해결될 수 있는 일도 아닌 것 같다. 권한박탈과 같은 부당한 처우에 대해 ‘그것을 이야기 하고 앞으로도 지속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자체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김만석 선생은 말했지만 과연 내가 생각하고 겪었던 문제들을, 사적으로 친분관계에 있는 사람에게가 아닌 사람에게, 다수의 이야기들이 오가는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도 하게 된다. 모두발언에서 김대성 선생님의 말, ‘동료들을 만나고 공유할 수 있는 말이 놓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로컬데모>와 간담회를 여는 궁극적인 목표라면 ‘그 자리’에서 나눌 수 있는 말들을 이제는 생각해야 할 것 같다.

 

2.

제1회 간담회에 대한 평가회가 2015년 8월 27일 목요일에 있었다. 중앙동 용두산 공원 입구에 있는 잠게스트하우스에서 있을 예정이었지만 장소가 협소해 중앙동 잠게스트하우스 인근에 있는 Coffine로 자리를 옮겼다. 박진명 씨를 비롯해 12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간단한 경과보고와 그 동안 외부로부터 전해진 반응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먼저 오갔다. 신생과 부산 작가회의 측으로부터의 응답은 여전히 없었다고 했다. 제1회 간담회 때 국제신문 기자가 참석했었지만 신문보도 역시 되지 않았다고 했다.

지역신문에서 다뤄지는 것은 포기하고 인터넷신문과의 접촉을 모색하고 있다고 김대성 선생은 말했다. 단 외부적으로 광범위하고 알릴 수 있는 적절한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를 박진명 씨가 제안했다. 이슈가 되고 주목을 끌만한 내용과 형식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인 듯하다. 그러나 신생사태와 그것을 묵과하고 있는 언론 역시 비판해야 한다면 굳이 언론에 맞는 방식으로 말할 필요가 있는가, 또 언론까지 비판해버린다면 공론화하는 데 있어서 한계를 초래할 수도 있고 결국 얻을 것이 없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로컬데모>라고 하는 협의기구의 구성과 진행방향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면서 그간 있었던 부당한 처우에 대한 사례 수집 등 제1회 간담회 때 오갔던 제안들이 다시 거론되기도 했다. 지역 문단과 언론, 노동시장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예술 활동에서의 착취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사안이었지만 문제는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지에 대한 논의에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다. 신생사태로부터 촉발되고 <로컬데모>라는 협의기구를 생각하고 구성하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신생사태라는 문제와 협의기구의 플랫폼을 만드는 것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에서 의견들이 서로 엇갈렸다. 신생사태를 과연 어느 선까지 해결하고 마무리 지을 것인가, 문화전반에 걸친 청년 예술인들의 착취라는 문제 안에 신생문제를 넣어 갈 것인가. 신생사태만이 아니라 <로컬데모>가 할 수 있는 여타의 문제를 설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로컬데모>의 목적이 ‘동료를 만나는 것, 말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라면 신생사태는 계속해서 말해져야 한다. ‘데모를 잘 하는 장소로서의 <로컬데모>, 새로운 주체를 확보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감안한다면 문화 활동 전반에서 발생하는, 신생사태와 같은 문제를 겪은 사람들 역시 지속적으로 만나야 한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만나야 하고 말을 나누어야 할 사람이 아닐까. 각자의 삶에서 걸어 나왔을 사람들, 그 발걸음들. 당장에 문제가 해결되고 즉각적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그저 가슴속에 쌓인 분노와 실망감, 오히려 무기력에 빠진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힘겹게 내딛었을 그 발걸음을 맞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역 문화예술장에 만연해 있는 개인의 권리 침해와 그에 대한 논의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묵살의 구조를 단박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투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문제를 중재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기구의 부재에 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신생 사태'로 촉발된 <로컬데모>의 활동 또한 장기화 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 투쟁 또한 일상을 버리고 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일상을 지키기 위한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역문화예술판의 권리 침해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기구가 부재하니 당사자인 우리들이 그 작업을 해나가야 했습니다. 그 첫번째 작업이 토론회가 아닌 간담회의 형식을 취해야 했던 것은 모두가 당사자의 위치에 발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고 단발성이 아닌 연속성을 가져야 했던 것은 필연적이었습니다.

렇게 <인적 재개발에 저항하는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연속 간담회> 1회를 열었고 부산의 문화예술인 24명이 모여 2시간 넘게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이 간담회를 알리며 저희들은 이 문제를 처음으로 부산작가회의가 아닌 다른 곳에 알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보다 그간 저희들이 놓여 있던 기구와 구조 속에서 한 스텝씩, 하나 하나 확인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지역 언론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취재 요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부산의 대표적인 두 언론사의 문화부 기자들 또한 이미 '신생 사태'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렇지 않아도 연락할 참이었다는 반가운 응답을 주기도 했습니다만 '신생 사태'에 관해서든 이 간담회에 관해서든 지역 언론사를 통한 그 어떤한 기사도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조금 기이하게 여겨지지 않습니까? 간담회에 한 지역 언론사의 문화부 기자가 취재를 하기 위해 참석을 했었고 간담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는데 말입니다. 이미 7월 말에 '취재해보겠다'는 언질을 받은 바가 있음에도 그 어떤 기사도 나오지 않아 해당 기자에게 전화로 문의했습니다만 '갈피를 잡기 어렵다'는 모호하고 궁색한 답변 밖에 없었습니다. 사건의 전개와 내용이 베일이 싸여 있는 것도 아닌데 갈피를 잡기 어렵다니요. 취재와 보도권이야 기자 고유의 권한이니 더 따져물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만 '갈피를 잡기 힘들다'는 답변은 무척이나 궁색한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또 다른 지역 언론사의 문화부 기자와의 통화 내용은 너무나 무례하고 어처구니가 없는 말들을 들은 터라 차마 여기에 옮기지는 못하겠습니다. 다만 지역 언론사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가라는 고민은 저희들만이 짊어져야 하는 몫은 아니겠지요.

연속 간담회를 시작으로 '신생 사태'로 촉발된 지역문화예술인들의 권리 침해에 관한 문제를 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 고민하기 위해 언론사 보도협조문을 작성했습니다. 보도협조문이라기보단 일지 같기도 하고 선언문 같기도 한 터라 읽으시는데 갈피를 잡기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LO-CUL-DEMO :

인적 재개발에 저항하는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연속간담회(1)

일시 : 2015년 8월 6일 목요일 오후 4시~6시

장소 : 부산 중구 중앙동 <또따또가 갤러리>

주최 : 로컬데모(LOcal CUlture DEMOcracy)

제 1회 인적재개발의 경험과 현재

 

간담회 문의 및 연락처 :loculdemo@gmail.com

 

2015년 한국문학의 최대 이슈는 ‘신경숙 표절 사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사태의 중요성은 신경숙이라는 유명 작가가 행한 표절이라는 비윤리적 행위를 폭로하는 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거대 출판 자본과 문학권력의 공모에 의한 역사적 결과라는 점에 있다. 이렇게 만천하에 드러난 한국문학의 민낯을 둘러싸고 쉽게 끝나지 않을 공방전을 치루고 있지만, 여기 우리들은 한국문학의 또 다른 민낯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비주류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터라 언제나 응원과 지지의 방식으로만 논의되어왔던 ‘지역문학’의 어떤 민낯 말이다.  

 

1999년 부산에서 창간한 시전문계간지 <신생>은 2015년 7월 1일, 5년 이상 편집위원 활동을 해온 문학평론가 김대성과 김만석의 편집위원 권한을 박탈했다. <신생>의 발행인(서정원)과 편집인(이규열), 편집주간(김경복), 편집위원(김수우, 김참, 이성희, 황선열), 편집장(이은주)은 두 사람을 제외한 자리에서 공모하여 ‘마음이 맞지 않는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를 내세우며 ‘편집위원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통보하였다. 정상적인 논의구조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편집위원 권한을 박탈한 이 사태에 대해 김대성, 김만석은 동의할 수 없다고 문제제기 하며 사과와 해명을 <신생> 측에 공식적으로 요구하였으나 그 어떤 응답도 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런 사정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며 이에 김대성/김만석은 7월 14일, 21일 두 차례에 걸쳐 부산작가회의 회원들에게 호소문과 경과 보고 메일을 발송하였다.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의 공식 입장은 이 건을 개별적인 사안으로 간주하고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7월 26일 김대성/김만석은 사무국에 사태에 대한 안일한 인식 변화를 촉구하는 메일을 보냈고 8월 3일 경과보고와 간담회 소식을 알리는 메일을 보냈다.(사무국에 보낸 메일을 제외하고 부산작가회의 회원들에게 보낸 메일은 모두 부산작가회의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업로드 되어 있다)  

 

이 사태는 얼핏 특정 잡지 내부에서 발생한 사적인 이해관계의 충돌로 보이지만 잡지를 만드는 구성원에게 가해진 비정상적인 공모에 의한 권한 박탈은 명백한 폭력이며 권리 침해에 해당한다. 이에 김대성, 김만석은 부산 문인들의 권리와 권익을 보호하고 대변하는 공적 기구인 <부산작가회의>에 이 문제를 알려 공론화 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는 <신생> 사태에 관련되어 있는 모든 구성원이 <부산작가회의> 회원일 뿐만 아니라 이 문제제기가 그저 개인의 억울한 사정을 고발하는 것을 넘어 지역은 물론이거니와 한국문학 전체에서도 구체적으로 거론된 바 없던 내부의 비민주적인 공모에 의한 폭력 행사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로 구성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태를 그저 황망하고 비참한 일을 당했다는 수동적인 경험이나 사적인 일로 묻어야 할 것이 아니라 공적인 문제로 옮겨두지 않는다면 이런 일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아울러 <신생>이 아닌 다른 매체에서, 다른 단체에서 또 다시 이런 문제가 발생할 때 그 사태를 홀로 감내해야 하는 이들이 두 사람처럼 참담함 속에 고립되지 않을 수 있도록 작은 매듭을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원들의 권리와 권익 보호를 위해 나서야 할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은 그 어떤 개입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만을 밝혔을 뿐이다. 우리는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을 통해 이 문제를 공론화 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거부당했기에 회원들에게 그간의 사정을 알려 의견을 모아줄 것을 요청했다. 이러한 과정은 3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부산작가회의>라는 부산문단의 공식 기구가 권력을 독점한 몇몇에 의해 사유화되고 있는 것이라 바꿔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이 문제의 공론화를 중단한다면 비정상적임도 불구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기는 공식 기구들과 개별자들의 권리를 침해당함에도 그 누구도 문제제기 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부산문단의 풍조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지역을 설명하는 오래된 수사 중에 불모지(不毛地)라는 말이 있다. 이는 혜택을 받지 못했거나 상대적인 박탈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영토’가 속절없이 ‘사막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해야 옳다. 이러한 ‘불모지’는 부산문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계 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구조적인 모순에 가깝다. 지역 문화예술 전반에 이러한 ‘사각지대’가 만연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신생> 사태로 촉발된 지역문화 민주주의의 권리 침탈에 관한 논의는 단순히 지역 문단의 구조적인 모순을 문제화 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 없다. 이에 우리는 <신생> 사태로 촉발된 권력 독점, 공적 기구의 사유화,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위계 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공론화 되지 못하고 사적인 방식으로 은폐되어 권리 침해 및 상징적 폭력이 만연화되어온 지역문화예술계의 사각지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우리는 <로컬데모(LO-CUL-DEMO)>라는 협의체를 구성해 8월 6일부터 <인적 재개발에 저항하는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연속간담회>를 시작한다. 부산 시민과 문화예술인 모두에게 열려 있는 첫 번째 간담회에서는 <신생> 사태의 당사자인 김대성, 김만석과 오랜 시간 금정구 예술공연지원센터장으로 초기 2년을 다졌지만 애써 일구어온 터로부터 배제당한 바 있는 박진명(현 부산청년포럼 위원장)의 모두 발언을 시작으로 ‘인적 재개발의 경험과 현재’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실제로는 노동이지만, 노동으로 평가되지 않았던 탓에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는 장으로부터 자주 버림을 받거나 함부로 취급되는 사례들을 수집하고 이를 공론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문화예술인들의 작업과 노동이 손쉽게 부정당하는 것은 문화예술 인력 장 자체가 워낙 열악하고 유연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 장이 독점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그 속에 있는 문화예술인들의 입과 손, 눈을 특정하게 구조화하는 일련의 방식들이 이런 사태를 만든다고 할 수 있다. 문화예술인들이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현장에서 함부로 내팽개침을 당하고 부당한 일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일들을 대수롭지 않거나 개인적 불우함 정도로 취급하는 것도 그러한 관행들이 매우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존재를 부정당하고 애써 일구어왔던 역사가 강제로 지워지는 폭력 앞에서 도리없이 무력하게 무너져야만 하는 사태를 다른 자리의 발명을 통해 공통의 문제로 삼고자 한다. 개별자들이 겪은 이 피해를 특별한 것으로 특권화 할 것이 아니라 그간 보이지 않았던 ‘권리 침해의 사각지대’를 향해 손을 뻗는(out-reach) 행위로 이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연속으로 진행될 간담회가 우리에겐 ‘지역 내부’에서 ‘지역 바깥’을 향한 첫 걸음이며 학연과 지연 등 강고하게 고착된 지역의 인적 관계망에 기대지 않고 시민을 비롯한 다종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이 다르게 만나고 결집할 수 있는 자리를 발명하는 의미를 가진다. 부품처럼 쓰이다 버려지는 구조조정의 시대를 구조요청으로 변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데모, 결집, 집회는 비단 부산이라는 한정된 지역에 국한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어질 연속 간담회는 바깥으로, ‘다른 이들’을 향해 손을 뻗는 행위와 다르지 않으며 그것은 새로운 구조술, 새로운 연대를 발명하는 공통의 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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