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 [인문학 칼럼] 겨울, 시간강사 /김만석(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51224.22031192814)

겨울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드러나는 계절이다. 잡풀에 가려졌던 나무의 뼈대가 드러나고 이파리에 가려진 혈관들도 속수무책으로 나타난다.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보이기도 하고 놓치거나 잊어버리고 있던 기억들이 달력을 바꿀 때 문득 나타나 괴롭히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겨울은 세계를 민낯으로 보이게 만드는 힘을 가진 계절이기도 하다. 아무리 두꺼운 옷으로 몸을 칭칭 감고 있어도 몸 안쪽에서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통풍이 예민하게 바깥 기온들을 알아차리듯, 겨울이 되면 녹음과 과실의 성과에 취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차갑게 식은 사물들은 생경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촉감을 날카롭게 만들기도 한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나 자신들을 드러낼 수 없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제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겨울은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스승'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겨울이 되면 '스승'의 자격이 박탈되는 사람들이 있다. 시간강사들이 그러하다. 시간강사는 대학 내 구성원이지만, 대학 내에서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겨울이 와도 이들은 더 잘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시간강사들에게 겨울은 헐벗는 시간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완전히 헐벗어 가시권에서 사라지는 존재라는 것이다. 물론 학생들과 교학상장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며 매 수업 때마다 무언가를 일구려고 하지만, 그것이 겨울 너머 '미래'를 열어주지 않으니 시간강사들에겐 봄도 없다.  

만약 시간강사의 현재가 망각되거나 지워야 할 시간이라면, 수행하는 수업은 모두 지워져야 할 수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시간강사들은 빈자리로 대학 내에 위치해 있는 셈이다. 시간강사의 역사나 경험들이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적 담화 속에서만 고개를 겨우 내밀 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비정규 시간강사 노조가 대학 내에서 자신들을 알려왔지만, 대학 안팎에서 모두 이들의 활동을 보고 있음에도 모른 척해왔고 그들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묵살해온 것도 사실이다. 이른바 시간강사법이 내년 1월 1일부로 발효되기 바로 직전에서야 '유예'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 이를 잘 보여준다.

물론 시간강사들이 단지 무기력하게 법적, 정책적 결정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발간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은 시간강사가 대학 내에 유령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연구노동자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위치시켜준 저작이다. 굳이 자신의 존재를 밝히고 위치를 가늠해야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야 곤경들로 가득 찬 이야기로만 읽히겠지만, 매번 애써 자리를 모색하고 활동의 지속을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시간강사의 일상을 치열하게 길어 올린 민속지적 보고서이자 연구서와 다르지 않은 책이다. 이뿐만 아니라, 비정규 시간강사 노조는 2007년 이후부터 지금껏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해 오지 않았던가. 

더불어 지난 18일 부산 중구 중앙동 또따또가 갤러리에서 진행된 '로컬데모'의 서평회와 연속간담회에서는 시간강사들이 부산에서 처음으로 대학 바깥에서 자신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논의한 바 있다. 시간강사 문제가 다만 당사자들이 겪는 곤경이며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내팽개쳐야 할 것이 아니라 사회의 공적 지식의 생산에서부터 학생들의 수업권 그리고 대학원생들의 연구 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평에서 공유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 자리였다. 비정규 시간강사 노조 활동을 하고 있는 분과 시간강사 노동으로 15년을 활동하신 분에서부터 강의를 더는 맡지 못하게 된 예술가 그리고 대학원생,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어우러져 열정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대체로 시간강사들이 고립돼 있기 마련인데, 이 자리에서 그 곁에 함께 선 많은 동료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대학 구조조정의 여파로 모두 각자도생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에서 고립을 피하고 곁에 선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할 수 있었다. 예컨대, 모두발언을 했던 한 대학원생은 연구공동체가 와해돼 가는 대학사회에서, 대학생들이 주체로 움직이는 지역적 연대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인문예술사회계 전공이 대학 사회에서 위축되거나 통폐합, 폐과되는 상황에서 연구의 지속과 이를 공적 지식으로 환원하기 위한 방식일 뿐만 아니라 연구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조건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는 또 지역 관계 세대 젠더 등도 함께 논의되었는데, 이는 시간강사의 곁이 다종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시간강사라는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던, 침묵(당)했던 주변들이 함께 만나 말을 드디어 주고받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소소하고 조용한 연대가 이 겨울을 버티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았을 테니까 말이다. 주변은 어디에나 있다. 손을 내밀어 곁이 되자. 


<<국제신문>> 2015.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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